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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메고 하느님 심부름 다니는… 나는야 '왈패 수녀'


발행일 발행일 : 2018.09.14 / 문화 A25 면
 기고자 :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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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소비녀회 괴짜 수녀 김현남, 60년 수녀 생활 책으로 펴내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남의 담 말고 높디높은 하느님집 담 넘자 했지요"

식당가에만 '욕쟁이 할머니'가 있는 게 아니다. 수녀원에도 있다. 서울 정릉 성가소비녀회(聖家小卑女會) 김현남(76) 메히틸다 수녀가 주인공이다. '왈패' '조폭' 등 험악한(?) 별명도 갖고 있다. 별명 중 압권은 '겨울빨래 수녀'다. 잘 마르지 않는 겨울철 빨래처럼 '못 말린다'는 뜻이다.

그녀의 '영웅심'이 발동해 1995년 교도소 사목을 자청했다. 10여 년간 청주교도소와 소년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면서 재소자들의 '엄마'가 됐다. 아들딸 재소자들을 위해 앵벌이 노릇도 했다. 이가 빠진 무기수를 위해 틀니를 해주고, 여자 죄수의 아기를 엄마가 출소할 때까지 임시 입양시키기 위해 성당을 돌면서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김 수녀는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 '겨울빨래 수녀한테 걸렸니?'(예지출판사)를 펴냈다. 씩씩한 수녀의 좌충우돌 사목기가 펼쳐진다. "그 사연도 재밌다. 기대하시라" 같은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와 287쪽 책이 후딱 읽힌다.

첫 사연은 '외상 떡'. 청주교도소에 처음 가보니, 다른 종교 성직자들은 먹을 것을 장만해 오는데 천주교만 아무것도 없었다. 김 수녀는 예수님께 매달렸다. "절에는 공양미라도 있는데 우리 천주교는 왜 공양미도 없나요? 저도 떡 좀 하게 해주세요. 떡요!" 기도의 응답은 '외상'이었다. 그 즉시 수녀는 천주교인 떡집을 찾아 외상으로 떡을 맞췄다. 그러자 기막히게 그 값만큼 후원금이 들어왔다. 그 후로 수녀는 돈 걱정을 하지 않았다. 교도소에 TV가 필요하면 서울의 전자회사 회장을 찾아가 간청해 얻어냈다. 초코파이 공장을 찾아 트럭째 얻어 오기도 한다. 김 수녀는 "언젠가부턴 '저분은 100만원쯤 도와줄 수 있겠다' 하는 게 보이고, 열심히 기도하고 부탁하면 대부분 들어주시더라"고 했다.

말썽쟁이 재소자를 순하게 만드는 게 그녀의 '전공'이다. 재소자들 앞에 서서 "이 집 담, 저 집 담을 뛰어넘는 담의 고수들이여! 이왕이면 저 높디높은 하느님 집 담을 뛰어넘어 보지 않으시렵니까?"라며 웃겨 놓고 시작한다. 부산교도소로 이감된 재소자는 거기까지 면회 온 수녀에게 "어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묻는다. 여성 재소자들을 이끌고 무밭에 가서 버려진 시래기를 주워와 교도소 복도에 널어 말리는 작업 대장 노릇도 했다.

'욕쟁이 수녀'는 금세 교도소 스타가 됐다. 2002년엔 대한민국교정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수녀원 응접실에서 1시간쯤 이야기하다 보니 인기의 비결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응접실에 잠깐씩 드나드는 이들을 하나씩 가리켜 가며 '영어박사' '성녀(聖女)' '우리 수녀원 미스코리아'라고 칭찬했다.

10년 전부터 김 수녀는 새 일감을 개척했다. 웃음치료사. "당시 어린이집에서 정년 퇴임하면서 예수님께 '제가 뭐 해먹을 게 없을까요?' 여쭸더니 '너는 어르신들과 놀아라!' 하셨지요." 바로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딴 그녀는 요즘도 전철을 타고 수도권 성당을 누빈다. 대학 때부터 연주해온 아코디언은 최고의 무기. 토끼 머리띠, 카우보이 모자까지 쓴 수녀가 '내 나이가 어때서' '칠갑산' '소양강 처녀' 등을 신명나게 연주하고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어르신들 얼굴에 함박꽃이 핀다. 9월 한 달만 9건의 강의가 잡혀 있다.

책 판매 수익금을 어디에 쓸지도 미리 정해뒀다. 빚 때문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다 용기를 내 수녀를 찾아왔던 한 젊은 가장을 돕기로 했다. 첫 만남에서 수녀는 "야 인마! 뒈지긴 왜 뒈져? 오늘부터 나에게 눈먼 돈이 생기면 다 네 거야. 얼마 안 되지만 작은 힘이 되어줄 테니 뒈지지만 말어"라고 덜컥 약속했었다.

자동차도 없이 항상 손수레에 10㎏ 가까운 아코디언을 싣고 서울 정릉 언덕길을 오르는 수녀는 "이걸 못 끌게 되면 끝이라고 각오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다 하느님이 순간순간 돌봐주시는 것이고, 나는 심부름만 하면 될 뿐"이라고 했다.

 
기고자 :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본문자수 : 193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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