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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저질 글’에 한국여성 애꿎은 피해 못말릴 인터넷 여론재판

    신지은

    발행일 : 2005.01.25 / 사회 A1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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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초 외국인 남성 외국어강사의 글 한 편이 인터넷에 확산됐다. ‘영어를 배우려는 한국 여성은 자기 쉽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공격에 응징당한 것은 외국 남성이 아니라 한국 여성들이었다.

    지난 22일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클럽(술집) 매니저 A(여·28)씨는 울면서 말했다. “손님 두 명은 직장에 사표를 쓸 작정이고, 한 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취업이 취소된 손님도 있고요. 저희 가게도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살인행위예요…. ”

    이런 처지에 몰린 것은 A씨와 단골 여자손님 8명의 작년 11월 말 클럽 파티 사진이 인터넷에 퍼진 게 발단이었다. 파티 참석자들은 한국인 남녀 70%, 외국인 남녀 30%였다.

    사진들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구인·구직 사이트(잉글리시 스펙트럼)에 오른 것은 12월 초순. 파티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찍어 올린 것이다. 한국 여성과 서양 남성들이 춤추는 모습, 맥주를 쏟아부어 한국 여성의 신체 일부가 비치는 장면 등 선정적인 사진들이었다.

    한동안 주목을 끌지 못한 사진들이 ‘폭풍의 눈’으로 떠오른 것은 열흘 전쯤. 인터넷 세상이 ‘외국인강사 한국 여성 비하발언’으로 시끄러웠을 때였다.

    한 외국인 강사가 파티 사진이 게재된 사이트에 올린 저질 글이 퍼지면서 ‘외국인 강사 추방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분노의 댓글이 사진 속 한국 여성들에게 쏟아졌다. “창녀들아, 서양놈들이 그리 좋더냐?” “몸팔고 배운 영어가 바디랭귀지지 무슨 토종 영어냐” 등등. 더 무서운 것은 “신원을 색출해 망신을 주자”는 주장이 곧장 실천에 옮겨진 인터넷의 괴력이었다. 사진에 실린 몇몇 여성들의 직장과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가 즉시 공개됐다.

    이후 겪은 고통을 A씨는 “인생이 짓밟혔다”고 표현했다. “시도 때도 없이 가게로 익명의 협박 전화가 걸려와요. ‘너 같은 창녀는 조용히 죽어라’ ‘양공주야! 가게 문 닫아라’ 등…. 요즘은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

    외국인들이 비하한 한국 여성들이 한국 네티즌들에 의해 다시 비하되는 뜻밖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반면 저질 글을 올린 외국 남성들이 합당한 대가를 치렀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 여성들의 법률 자문을 맡은 임상혁 변호사는 “쓰나미(지진해일)가 지나간 자리에 참혹한 주민들이 남았듯, 인터넷 이상 열기가 휩쓴 자리에 한국 여성들만 피해자로 남았다”고 말했다.

    신지은기자 (블로그)ifyouare.chosun.com

    기고자 : 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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