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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그녀의 눈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번쩍였다. 시종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에게 “당신을 세계 최고의 검객으로 만든 기술이 무어냐?”며 칼을 쥐어 보라고 한 순간이었다. 푸른 눈의 금발 미녀는 금세 그녀의 별명처럼 ‘코브라’로 변했다.

여자 펜싱의 살아있는 전설인 이탈리아의 발렌티나 베잘리(Vezzali·33)가 서울에 떴다. 베잘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여자 플뢰레 종목에서 금메달 4개(개인전 2개, 단체전 2개)를 땄고, 세계선수권 우승을 9차례 차지한 ‘절대 강자’다.

그녀는 4일부터 사흘간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리는 SK텔레콤 여자플뢰레 국제그랑프리에 참가하기 위해 이틀 전 한국에 도착했다. 이 대회에는 한국 선수로 사상 처음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남현희를 비롯해 세계랭킹 16강까지 정상급 선수들이 모두 참가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개인전 3연패를 노리고 있는 베잘리는 현재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3일 숙소인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난 그는 얼마 전 정강이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고 했다. “그래도 이번 대회를 대충 할 생각은 없어요. 체력은 좀 달리겠지만 승부는 어디까지나 승부니까요.”

베잘리는 이탈리아 펜싱의 요람인 예시 출신이다. 이탈리아 동북부 지역에 자리잡은 예시는 이탈리아 펜싱의 대부 에치오 트리콜리가 펜싱학교를 세운 뒤 수많은 세계 챔피언들을 배출한 도시다. 베잘리는 네 살 위 언니 나탈리를 따라 6살 때 펜싱에 입문했다. “예시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모두 펜싱을 하고 싶어해요. 아버지는 여자가 펜싱보다는 수영을 하는 게 좋다고 했지만 제 뜻을 굽히지는 못했지요.”

베잘리는 10살 때부터 연령별 펜싱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진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는 경기가 끝난 뒤 제가 하도 서럽게 울고 있으니 부모님께서 ‘얘야 질 때도 있는 거란다’라고 위로를 하셨지요. 저는 5대1로 이겼는데 한 점을 내준 게 너무 분해서 울고 있었던 건데요.”

그녀가 세계 최고수가 된 데는 승부근성 말고도 남다른 재능이 있었을 것이다. “저는 본능이라고 생각해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와 이제 끝낼 때가 됐다는 느낌이 와요. 그 느낌대로 움직이지요. 그 느낌을 예리하게 만들기 위해 20년 넘게 매일 6시간 이상 훈련을 하고 있어요.” 베잘리는 펠레와 마라도나 같은 축구 선수들이 비슷한 본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체력과 스피드, 전술, 심장, 예술적인 감각이 하나로 모일 때 또 다른 차원의 경지가 오지요.” 베잘리는 아담한 체격(1m64)이지만, 그녀보다 크고 빠른 선수들을 능수능란하게 물리쳤다. 그는 남현희 등 한국 펜싱 선수들에 대해 “너무나 빨라서 경기를 하고 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빠름에도 빈틈이 있어요. 어떤 것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 두고 온 아들과 남편이 보고 싶다고 했다. 베잘리는 2002년 이탈리아 3부리그 축구선수인 도메니코 지우글리아노와 결혼해 2년 전 아들 피에트로를 낳았다.

경찰 체육팀 소속인 그녀는 아직 대학생이기도 하다. “법률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요. 경찰로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법을 공부해야 하니까요.” 베잘리는 “펜싱을 통해 세계 정상에 섰지만,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리는 게 최고의 기쁨”이라고 말했다.

같은 기간 서울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는 남자플뢰레 월드컵 A급 펜싱선수권대회도 열린다. 이 대회에는 남자 플뢰레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의 피터 요피치 등이 참가한다.

(민학수 기자 haks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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