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지난달 30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에 위치한 핸드백 공장 '고마운 손'. 흰색 위생모와 연두색 형광 조끼를 맞춰 입은 51명 직원은 팀을 나눠 가죽에 풀칠을 하고, 야무지게 모양을 잡아 접고, 미싱으로 봉합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생산1부 소속 이상엽(40·경기도 부천)씨는 홈쇼핑에 납품할 카드지갑용 가죽에 꼼꼼하게 풀칠을 했다. "상엽씨 손이 제일 빠르고 꼼꼼하다"는 팀장의 칭찬에 신이 난 이씨는 더욱 바지런히 손을 놀렸다.

이씨는 정신장애 3급 진단을 받은 장애인이다. 이곳에는 이씨를 비롯한 장애인 9명, 탈북자 9명, 노숙자 출신과 차상위계층 14명 등 총 32명(전체 직원의 63%)의 '취약계층'이 일하고 있다.

'고마운 손'은 이들의 자활능력을 길러주고 수익을 다시 사회기부로 재투자할 목적으로 지난 8월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보건복지가족부·열매나눔재단·SK에너지 등이 8억원을 투자하고 핸드백 업체 '쌈지'가 5년간 제품하청과 기술지원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씨는 "여기서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과거 대한세무협회 등에서 일도 했었지만, 2000년부터 계속 실업상태였다. 부천의 한 복지관에 나가 콘덴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월 5만~7만원 정도 벌거나 부업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집중력 좋고 꼼꼼한 그의 성격을 눈여겨본 복지관에서 '고마운 손'에 이씨를 추천했고 지난 8월부터 함께 일하게 됐다. 이씨는 "일도 마음에 들고, 월급도 만족스럽고, 같이 일하는 사람도 좋다"며 "이곳에서 평생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마운 손'은 이씨가 장애인이라고 임금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곳의 생산직 직원들은 누구나 수습과정 첫 두달은 85만원의 월급을 받고, 그 후로는 120만원에 4대보험도 적용받는다. 탈북자 성지은(가명·30·서울 양천구)씨도 수차례 사무 보조직 면접에서 낙방하고 '고마운 손'에 입사했다. 2007년 1월 한국에 들어올 당시 성씨는 한국 생활에 대한 꿈이 많았다. 북한에서 접해보지 못한 컴퓨터 기술이 신기했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있으면 한국사회에 정착하기도 쉬울 것이라는 조언을 받아 직업학교에 다니며 열심히 사무자동화·오토캐드 등을 배웠다.

하지만 성씨가 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지원한 대부분 회사는 "나이가 많다"며 퇴짜를 놨다. 고민 끝에 들어온 '고마운 손'에서는 유일하게 컴퓨터 미싱을 다룰 줄 아는 기술자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성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생활비를 부쳐줘야 하는데 취직이 어려워 조마조마했었다"며 "원래 원하던 사무직 일자리는 아니지만 인정받고 다닐 수 있고, 분위기도 따뜻해서 좋다"고 말했다.

'고마운 손' 오형민(44) 사장은 "마이너리티를 고용한다고 해서 특별히 경쟁력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고령자들이 장애인이나 탈북자 사원들을 챙기고, 직원들끼리 가족처럼 서로 의지하면서 시너지 효과도 있다.

오 사장은 지난 9월 탈북자인 직원 강모씨에게 편지를 한통 받았다. 강씨는 처음 이곳에 배치됐을 때 업무도 마음에 들지 않고 집(서울 월곡동)도 멀어 정을 붙이지 못했다. 8월에는 보이스피싱을 당해 200만원을 날린 터라 이래저래 상심이 커 겉도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직원들과 사장님이 허물없이 대해주시는 데 정말 감동을 받았다"며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기업'으로서도 제 구실을 해나가고 있다. 지난 8월 첫달에 4000만원 매출을 기록한 이후, 9000만원(9월), 1억원(10월), 1억1000만원(11월) 등 상승세다. 오 사장은 "내년 상반기 정도면 손익분기점을 돌파할 것으로 본다"며 "MCM을 비롯해 여러 핸드백 업체에서 납품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고마운 손'의 취지를 알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많다. 부천의 명함집에서는 직원들 명함을 무료로 파주었고, 한 베이커리에서는 한달에 한두 번씩 직원 간식으로 빵을 가져다 준다. 공장 내 방송시설은 한 전기회사에서, 휴게실에 비치된 도서는 영풍문고에서, 공장을 밝은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수십개의 그림액자는 인근 교회와 사회복지관에서 그려 주었다.

오 사장은 "도움을 받을 때마다 고삐를 다시 쥔다"며 "직원들에게 '우리는 복지기관이 아니다. 열심히 일해 다시 사회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고마운 손 '은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 이익의 50%를 다시 사회에 기부하도록 돼 있다.

오 사장은 "직원들이 이 안에서 더 큰 꿈을 꿨으면 좋겠다"며 "3년 안에 직원 3명 정도를 소규모 가죽공장 대표로 독립시키고, 취약계층에서 관리직도 나오게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3년 안에 사장 만들어주겠다'고 공지했더니, 직원들 눈빛이 달라지더라고 오 사장은 전했다.

☞ 사회적 기업

취약계층 지원, 환경보호처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통해 영리를 창출하는 기업. 기업의 영리성과 자선의 사회성을 통합한 새로운 개념의 기업이다. 자선단체와 달리 수익을 냄으로써,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한다.

기고자 : 김경화
본문자수 : 261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