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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깨면, 비로소 보인다… 空間(공간)의 참모습

英왕립 조각가협회 신진작가상… 허산의 '벽을 깨다'展
    김미리

    발행일 : 2015.08.04 / 문화 A18 면 (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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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수를 잘못 찾은 줄 알았다. 벽은 군데군데 뜯겨 나갔고, 기둥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 한쪽 벽엔 아예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사람 둘 거뜬히 지나갈 크기다. 대체 '작품'은 어디에?

    설치작가 허산(35·사진)의 전시는 보물찾기다. 작품을 건물과 한몸인 양 무심히 둔다. 무엇이 작품인지,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당황하는 관객을 향해 작품들이 소리 없이 아우성친다. "고정관념, 틀에 박힌 시각 버리고 나를 찾아봐!" 찬찬히 다시 공간을 들여다보면 비로소 그 '아우성'이 보인다. 뜯겨 나간 벽 안에 도자기 파편, 색소폰이 박혀 있다. 이 벽은 뜯긴 벽이 아니라 뜯긴 벽처럼 만들어 원래 벽에 붙인 설치 작품이다('Forgotten' 시리즈). 쓰러질 듯한 기둥 역시 진짜 기둥이 부서진 게 아니라 부서진 기둥 모양으로 만든 설치 작품이다('부서진 기둥' 시리즈). '가짜'를 감지하는 순간 당연하게 바라봤던 공간에서 가상과 실제가 분리되고, 작품과 일상이 구분된다.

    "평범한 공간에 약간의 개입을 합니다. 관객들이 이 개입을 발견하면서 익숙했던 공간 전체를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거지요."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3층에 있는 태광그룹 일주·선화갤러리에서 개인전 '벽을 깨다―허산'을 여는 작가를 만났다.

    허산은 최근 영국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영국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유학한 뒤 2013년 '영국 왕립 조각가 소사이어티'에서 주는 신진작가상을 탔고 영국 정부 예술 컬렉션에서도 작품이 소장됐다. 7월 초 시티 오브 런던이 주최하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 '스컬프처 인 더 시티'의 올해 작가 13명 중 하나로 선정됐다. 선정 작가엔 데이미언 허스트, 아이 웨이웨이 등 세계적 미술가들이 포함됐다. 그의 조각 '부서진 기둥'은 현재 런던 세인트 헬렌 비숍게이트 교회에서 전시 중이다.

    서울대 조소과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가 건축적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전시장에 갔는데 특이한 작품이 전시 중이었어요. 공사장처럼 벽도 무너지게 만들었고 공구도 나뒹굴더라고요. 재미있는 작업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헬멧 쓴 인부가 벽 안에서 쑥 나오며 비키라더군요. 작품이 아니라 진짜 공사 현장이었던 거죠. 개념을 중시하는 현대 미술의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작품입니다. 버리지 마세요!' 졸업 작품전에 어김 없이 등장하는 이 표시도 그를 고민케 했다. 작품과 비(非)작품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사람들의 생각을 일깨우는 작업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중 가장 유효한 도구가 '건물'이었다.

    "건물에 상처를 내 콘크리트를 살짝 노출함으로써 우리가 콘크리트 덩어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겁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그제야 우리 몸에 있는 피를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요." 부서진 틈 사이엔 농구공, 도자기 파편, 색소폰 같은 소소한 추억을 묻어둔다. 그 사물을 발견하는 과정이 마치 고고학 발굴 같다. "어렸을 때 경주에서 살았어요. 축구하다 땅 파보면 기왓장이 나왔어요."

    '착시 효과' 덕에 관객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대체 작품이 어딨느냐'는 물음이다. 영국 글로스터셔 대학에서 '부서진 기둥' 작품을 전시할 땐 학생들이 기둥이 무너진 줄 알고 구급대원을 불러 작품에 칭칭 지지대를 감아둔 적도 있단다.

    그의 관심이 조준하는 과녁은 결국 사회다.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있어도 진짜 콘크리트 속은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지만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 모를 뿐이지요. 작은 콘크리트 틈이 사회를 보는 작은 창이 됐으면 합니다." 9월 25일까지 (02)2002-7777
    기고자 : 김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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