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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윤동주가 묻는다, 지금 네 삶은 부끄럽지 않냐고

왜 지금 윤동주인가… 올해 타계 71주기, 영화·출판 등 윤동주 소재로 한 작품 열풍
    변희원

    발행일 : 2016.02.22 / 문화 A2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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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부장인 최민수(39)씨는 아침마다 최근 산 윤동주(1917~1945) 시집 복각본의 시 한 수를 읽고 출근한다. 책상에도 펼쳐놓고 자주 읊다보니 '자화상'처럼 좋아하는 작품은 아예 외우게 됐다. 그는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서, 자유롭고 싶지만 쳇바퀴 도는 삶을 사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올해는 윤동주 타계 71주기다. 17일 개봉한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는 20일까지 누적 관객 15만5000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5위에 올랐다. 출판사 세 군데서 초판본과 디자인까지 흡사하게 출간한 복각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놨다. 그중 하나는 두 달 만에 5만 부가 팔리면서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부문7위, 시 부문 1위에 올랐다. 필사책으로 나온 것만 다섯 종이다. '소설 윤동주'와 평전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도 이달 중순 출간됐다. 다음 달에는 서울예술단이 2012년 초연을 했던 창작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올린다. 이쯤 되면 '윤동주 열풍'이다. 중·고등학교 때 이미 접했던 윤동주와 그의 시가 왜 지금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일까.

    ◇SNS 피로를 대신할 '자기 성찰'

    회사원 강하나(33)씨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30분에 한 번씩 확인하고 하루에도 네댓 개의 게시물을 올렸었다. 그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복각본을 산 것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책 사진 때문이었다. 그는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서 남에게 너무 많이 신경쓰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치열하게 돌아보는 시를 읽으니 SNS에 집착하는 게 피곤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트위터를 없앴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도 잠정적으로 폐쇄했다.

    인터넷이나 SNS에 올라온 영화 '동주'와 윤동주 시를 접한 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강씨처럼 "나를 돌아보게 됐다"라는 것이다. 요즘은 SNS처럼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로는 많지만,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공간이나 여유는 별로 없다. 윤동주의 시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윤동주 평전 '처럼'을 쓴 김응교 교수는 "바쁜 일상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윤동주의 시가 내면을 투시하는 '성찰의 언어'라는 점에서 새로운 자극을 준다"고 했다.

    ◇20대가 이끄는 윤동주 열풍

    윤동주는 스물여덟 청년으로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 열풍을 이끄는 것도 20대 청년들이다. 복각판 시집 구매자 중 60%가 20대다. 이들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복각본이나 윤동주의 시를 필사한 것을 SNS에 올려 인증을 하기도 한다.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시를 많이 접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20대는 시를 거의 읽지 않는다. 옛날 서체와 세로쓰기로 나온 복각본이나 흑백으로 찍은 영화 '동주'는 이들에겐 새로운 즐길 거리다"고 했다.

    윤동주에 대한 20대의 관심이 재미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 시대건 청년에게 만만했던 적은 없다. 윤동주도, 지금의 20대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괴로워하지만, 이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윤동주의 시를 필사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상연(27·취업 준비생)씨는 "윤동주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시대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그의 시에 많다. '쉽게 쓰여진 시' 같은 걸 읽다가,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취업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울컥했다"고 했다.

    '창밖에 봄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로 시작하는 '쉽게 쓰여진 시'에서 윤동주는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고 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던 시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기고자 : 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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