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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相] 거짓말 행진

    최원규

    발행일 : 2016.11.25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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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전 어느 경찰관이 검찰에 불려왔다. 폭행 사건 봐주고 돈 받은 혐의였다. 처음엔 딱 잡아뗐다. "제가 그날 비번이었어요. 후배가 근무했는데, 그 친구가 그럴 줄 몰랐네요." 조사해 보니 비번인 것은 맞는데 그날 근무한 게 드러났다. 다시 검찰에 나온 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검사실 문을 열자마자 무릎부터 꿇었다. "검사님 죄송합니다!" 검찰 조사실의 거짓말 풍경은 지금도 비슷하다. 한자리에서 일곱 번 진술 바꾼 피의자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일본 잡지가 '한국은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나라'라는 기사를 실었다. 불쾌하긴 하지만 우리 경찰청 통계를 인용해 위증·사기·무고죄로 기소된 사람이 인구 비례로 볼 때 일본의 165배라고 들이대는 덴 할 말이 별로 없다. 최순실 국정 농락 사건에서도 관련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거짓말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최씨는 딸의 초등학교 동창 아버지 회사에 현대차 납품을 주선해주고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회사 자체를 모른다"고 잡아뗀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첫 대국민 사과에서 최씨에게 '연설과 홍보'에 관한 의견을 물은 것처럼 얘기했지만 보낸 문건엔 정부 고위 인사, 국무회의 자료까지 들어 있었다.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후엔 최씨에게 문건을 안 보냈다고 했으나 올 4월까지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에 관여한 안종범 전 수석,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도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고 하다가 검찰에 와서야 각각 "대통령 지시로 했다" "안 전 수석이 시켰다"고 했다.

    ▶"하나의 거짓말이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스무 가지의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 거짓말이 유달리 많은 것은 거짓이 드러났을 때의 부담보다 거짓말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우리는 법정에서의 거짓말은 위증죄로 처벌하지만 수사기관에서 하는 거짓말은 방어권 차원에서 용인한다. 미국은 참고인·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무죄 주장을 위해 거짓말을 하면 처벌한다. 묵비권은 보장하되 일단 입을 열면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네덜란드 선원 하멜도 '표류기'에서 '조선인은 거짓말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순실 사건을 보면 정말 한국인에게 '거짓말 DNA'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직이 나라를 바꾼다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보면 땅을 칠 노릇이다.

    기고자 : 최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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