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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김정일(홍사중 문화마당)

영화탐닉은 자폐증환자의 현실도피
    홍사중

    발행일 : 1994.08.30 / 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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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지병설난무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보면 언제나 그는 조끼에 손을 꽂아넣고 있다. 병적학에 의하면 그것은 신경성 위궤양에 의한 위통을 참기 위해서가 아니면 피부병으로 가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웅이 가려움을 느끼면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내게 된다"고 a 카렌은 말한다. 그토록 뛰어난 대통령이던 루스벨트도 만년에 병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처칠보다도 스탈린을 더 믿는 따위의 잘못을 여러번 저질렀다.

    김일성의 영결식때 텔레비전에 비친 김정일은 시종 입을 벌리고 완전히 기가 빠져 있는 사람같이 보였다.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 온 세계에는 그가 무슨 병에 걸려있는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심한 성인병에 걸려있다는 설도 있고, 자동차사고의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설도 있다. 그가 어떤 병을 앓고 있든 그가 정상이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김정일은 92년4월의 북한 군사행사때 단상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에게 영광 있으라"고 외쳤다. 그것이 지금까지 기록에 남아있는 유일한 공식석상에서의 연설이었다. 그는 또 83년에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적이 있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외국여행이었다. 이것은 누가 어떻게 봐도 정상은 아니다. 프로이트가 아니라도 누구나 그가 심한 자폐증에 걸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 국방부의 정보처(dia)는 김정일이 편집병과 과대망상증 에 걸려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로마시대의 네로황제도 이와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네로도 처음에는 매우 내성적이고 유약하고 겁이 많았다.

    네로와 같은 증세

    그는 황제자리에 오르자마자 어느 사형수의 사형집행 영장에 서명을 해야 했다. 이때 그는 자기가 이름 석자를 쓸 줄 안다는 것을 몹시 한스럽게 여겼다. 그처럼 마음 여린 그를 폭군으로 만든 것은 황제의 절대권력이었다. 네로는 또 나중에 자기 어머니까지 죽음으로 모는데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서러워했다.

    사람은 꼭 강한 사람만이 잔인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약할수록 더욱 잔인해지기 쉽다. 특히나 그가 절대적인 권력의 소유자인 경우에는 잔인해지게 마련이다. 그는 늘 자기가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 또한 자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을 불신의 눈으로 보게 된다. 이런 불안과 불신을 떨구기 위해서도 그는 냉혹해질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국가에서 대량숙청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지금 김정일처럼 외롭고 불안스러운 사람도 없다. 어쩌면 그는 공포마저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그는 자기 아버지의 절대적인 후광효과를 누려왔다. 그는 얼마든지 무책임할 수도 있었다. 미국 정보국은 그를 어리광쟁이 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7세때 생모를 잃은 그는 가장의 따스함을 모르고 자랐다. 그는 언제나 외토리였다.

    독재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피터팬 신드롬에 사로잡혀 왔다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꼭 엄한 창업자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온데 대한 뉘우침에서든, 또는 베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보상으로 아들의 응석받이를 마냥 받아주고 탈선을 눈감아 주는 사이에 아들을 비뚤어진 의지박약아로 만들어나간 것과도 같다.

    과대망상 키워가

    그는 영화광이라 할만큼 영화를 좋아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독재자들이 영화를 좋아했던 까닭과는 다르다. 그에게 있어서는 영화란 술과 마찬가지로 현실로부터의 도피의 한 수단인지도 모른다. 자기 아버지의 그늘이 클수록 그 억눌림의 고통도 컸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을 떠난 은막의 세계는 그의 과대망상 을 더욱 키워나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그가 주석자리에 오른다면 그는 어떤 정치, 어떤 대외정책을 펴나갈 것인가. 여기에 우리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 해답을 우리는 왜 그가 머리손질을 하지 않은 더벅머리를 하고, 왜 단 한번도 버젓한 양복을 입지 않는지 하는 그의 이상심리에서 찾는게 쉬울지도 모른다. <논설고문>

    기고자 : 홍사중
    본문자수 :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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