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현재
외무부에는 세계 주요 외교사안에 대한 한국의 입장 이란 두꺼운 문건이 하나
있다.
각종 분쟁이나 갈등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세워 한 곳에 담은 4백37쪽 짜리
모음집이다.
외무부는 지난 5월 이 문건을 새로 손질했다.
96년부터 안보리의 비상임 이사국으로 진출하게됨에 따라 이 문서에 손이 자주
가게됐다.
"각국의 문제가 어쩌면 모두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오준 유엔 정책과장은
말한다.
95년까지 유엔은 시기별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연관을 맺었다.
45년 해방이후 50년대말까지 한국은 유엔을 지원자로 맞았다.
정치적으로는 47년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설치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untcok)의
감시하에 총선을 실시해 한국정부 탄생의 합법성을 인정받았으며 경제적으로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이 생기기도 했다.
50년 6 25동란시에는 유엔을 통한 집단안보 외교력을 바탕으로 북한의 침략을
38선에서 저지시키기도 했다.
60년부터 75년까지는 유엔은 남북대결의 장이었다고 유엔전문가인 이시영
외무부차관은 말했다.
이는 아프리카의 해 로 불리는 60년이후 아프리카 신생국이 대거 가입함에따라
유엔 세력판도가 미국 중심의 단일체제에 비토그룹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70년까지 정부는 주한미군철수등을 요구하는 북한 지지국가들의 결의안
채택을 매번 부결시켰다.
"당시 김용식유엔대사는 모든 외교력을 표대결에서의 승리에 투입했다"고 한
당국자는 말했다.
80년대 들어 유엔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
83년 소련에 의해 대한항공 007기가 격추됐을때 정부의 요청에 의해 안보리가
소집돼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기도 했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과 중국등과의 수교등 북방외교로 인해 공산권에 대한 외교가
강화된 뒤인 91년에야 한국은 유엔 무대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한국은 유엔 무대에서 국제사회의 기여자로 탈바꿈하게 됐다.
96년부터면 이제 한국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 유엔의 지도적 역할을
맡게된다.
"이 자리는 국제사회에서 중견국가로서의 한국 이미지와 걸맞는 위치"라며
"외국어실력도 달리고 유엔경험도 짧지만 할 일은 많을 것"이라고 한 고참외교관은
말했다.
<구성재 기자>
*48년 3차총회 대표단 7명 "첫 인연"/50년 7월 7일 최초로 한국에 군사파견/유엔
가입후엔 각기구 부의장국 피선도
관련기록들
93년 9월29일 오후 7시55분쯤(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소재 유엔본부 총회
본회의장.
이곳 의장석에는 한승주 당시 외무장관이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본회의 운영을
총지휘하고 있었다.
오후 9시25분까지 1시간30여분동안 의장 권한대행으로 사회봉을 휘두르며
인도-뉴질랜드-베냉-파키스탄 등 4개국 대표 연설을 소개하는 등 진행을 맡은
것이다.
당시 주유엔공사였던 서대원 외무부 공보관은 "수개월동안 사전 교섭을 벌여 그해
유엔총회에서 총 21개로 구성된 부의장국중 하나로 피선됐기 때문"이라면서 "비록
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유엔가입 2년만에 총회 의장단 국가로 선출돼 유엔 대표부
직원들이 남다른 보람과 감회를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창설 반세기를 맞는 유엔과 첫 인연 을 맺은 것은 48년 12월6일
제3차총회.
장멱 수석대표를 단장으로 조병옥 정일형 김활란 등 7명의 초미니 대표단 이 참석,
"대한민국정부는 한국국민의 정당한 선거를 통해 수립된 한반도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총회결의를 압도적 다수로 채택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50년 7월7일 안보리 결의 84호를 통해 한국에 대규모 유엔군
파병을 결정한 것은 유엔역사상 최초의 군사파견이었다.
이처럼 우리와 유엔은 건국과 더불어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해왔다.
유엔정식가입이후 유엔에서 한국이 거둔 기록은 초고속 그 자체라는 게 국내외의
일치된 평가다.
92년 6월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 부의장국 피선 93년 3월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사회위원회 부의장국 피선 94년4월 경제사회이사회
마약위원회 의장국 피선 등 .
특히 남북한의 결의안채택을 둘러싸고 70년대 중반까지 치열한 표 각축이 벌어졌던
제1위원회(군축 및 국제안보문제) 부의장직을 92년 10월 제47차 유엔총회에서 따낸
것과 소말리아 파병은 유엔가입후 최단시일에 이뤄진 결정이란 점에서
국제정치적으로 각별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송의달 기자>
*인터뷰/한국대표부 박수길 대사/"통일대비 이사국 진출 중요"/선진국-비동맹권
교량역 위상 높이겠다
내달초 안보리비상임이사국 진출을 결정할 총회투표를 앞두고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박수길대사를 만나 득표예상,이사국진출후 향후 유엔외교 방향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비상임이사국 진출 결정시기와 득표예상은 .
"내달 첫째 또는 둘째주중 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1백85개 회원국중 1백60여개국의 지지획득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 투표시 10%정도의 오차가 생기는 것이 통례지만 현재까지 1백50여개국이 서면
또는 구두로 지지를 약속해왔다.
"
-향후 한국의 유엔및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과 역할 변화는 .
"안보리이사국 진출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부담만 늘어나지 실익이 없다는 비판은 국가이익이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국위,
영향력, 국제사회 기여능력, 여타 국가들의 평가에 의해 종합결정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반면 한국이 갑자기 국제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진국이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안보리는 15개 이사국이 주로 선진국과 비동맹권 국가로 양분돼 있다.
따라서 한국은 양측의 교량적 역할을 하면서 위상을 높일수 있으며 국익증대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안보리 의장국은 언제쯤 맡게 되나.
"15개 이사국이 영어 알파벳순으로 매달 의장국을 맡는다.
내년 1월 정식으로 이사국이 되면 97년2월쯤 의장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장은 통상 해당국 유엔대표부 대사가 맡지만 주요 현안이 있을 경우 외무장관이
담당한다.
"
-이사국 진출에 대비한 대표부 조직보강 및 증원계획은 있는가.
"본부에 12명 증원을 요청해 3명이 새로 부임했다.
적어도 3-4명은 더 보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앞으로 한국의 유엔외교 방향은 .
"유엔은 정통 다자외교의 유일한 중심인 곳이다.
미국도 유엔을 통한 다자외교를 정책수행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미-일-중-러-유럽연합(eu)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경제-군사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환경, 인권 등은 유엔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성숙한 일원으로 평화유지활동, 상설예비군, 지역개발 등
국제문제 해결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정책이 평화지향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유엔을 통한 외교활동
강화는 물론 한반도통일에 대비, 세계에 우호적 대한관을 미리 다지는 이중효과도
볼수 있을 것이다.
"<유엔본부=윤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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