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한편의 오페라를 제작한다는 것은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막대한 인력과 제작비는 차치하고 음악 연극 무용 미술의 총체극을 만드는데 엄청난 준비와 시행착오가 따르기 때문이다. 전문음악인들도 혀를 내두르는 오페라를 직접 만들어 공연장에서, 그것도 학예회 가 아니라 일반관객을 상대로 당당히 막올리는 무서운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은 직업오페라단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악과 기악을 주업으로 삼는 전문연주자도 아니다. 컴퓨터통신 하이텔의 고전음악동호회서 만난 1천4백명의 20-30대 젊은이들이 그 주인공. 이들은 11월 16일 오후7시 서울 계몽아트홀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 를 공연한다.

연극이나 연주회도 아니고 오페라라니 . 그것도 통신을 통해 만난 모래알 같은 애호가들이 덩치 큰 무대를 만들겠다니 . 당돌한 신세대들의 오페라 만들기 소문을 반신반의하던 음악계도 막상 공연날짜가 잡히고 포스터가 나붙자 놀라운 시선으로 깜짝무대 를 지켜보고 있다.

모차르트작품 선택

동호회가 오페라를 만들기로 작정한 것은 지난 4월. 90년 동호회 창립때부터 운영진으로 활약해온 윤정열씨(23 연세대 대학원생)가 "좋아하는 음악을 객석에서만 즐길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데서 비롯되었다. 윤씨의 제안은 동호회가 운영하는 전자게시판을 통해 전국의 회원들에게 알려졌고, 컴퓨터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방(채팅)을 통해 토론에 부쳐졌다.

오페라 만들기는 해보자 는 쪽으로 쉽게 결론났다. 토론 과정에서 음악을 전공한 회원들과 신문기자-음악pd-음악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젊은 회원들의 참여와 주도가 큰 추진력이 되었다.

"과연 해낼수 있을까 하는 우려로부터, 젊은 객기를 빌리지 않으면 언제 다시 꿈같은 무대를 시도해보겠느냐는 등 온갖 주장들이 게시판에 쏟아졌어요. " 작곡가 모차르트의 이름(wamozart)을 id로 쓰는 윤씨는 모차르트의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 를 공연작품으로 골랐다.

연출후보도 때맞춰 나타났다. 이우혁씨(29 자동차부품기술연구소 연구원)가 그 주인공. 대학연합 음악서클에서 자작 뮤지컬 파우스트 1988 라보엠 1993 을 공연한 적도 있는 이씨는 대학가에서 문화게릴라로 이름을 날린 재주꾼.

이씨가 참여하면서 오페라 만들기는 급진전되었다. 성악을 전공한 남녀 대학생을 주축으로 가수를 모으고,동호회 소모임에서 활약하는 아마추어 연주자 15명으로 관현악 오케스트라도 구성했다.

현대감각맞게 각색

본격 연습은 6월부터 돌입했다. 연습실은 은평구 대조동에 있는 우륵문화센터. 날계란을 담는 판지로 사방 음향판을 댄 지하실에서 매주 두 차례 맹훈을 거듭하기를 넉달. 성악에 비해 불안하고 삐걱대던 기악도 차츰 제소리와 앙상블을 찾았다. 대사와 연기는 신촌의 카페와 대학의 빈강의실을 옮겨다니며 외우고 익혔다.

남은 문제는 대관과 공연을 치를 비용이었다. 최근 개관한 중규모 극장에 대관을 신청했으나 아마추어무대가 미심쩍었던지 극장측은 대관을 허락지 않았다. 공연을 미룰까도 했으나 다행히 6백석규모의 중공연장인 계몽홀에서 무대를 내주었다. 대관료 등 공연비용 1백20만원은 회원들이 티켓을 팔아 충당하기로 했다. 연출자 이우혁씨는 "원작의 사랑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각색했다"면서 "채팅을 통한 젊은이들의 익명의 사랑법과 pc통신풍속도를 그리겠다"고 의욕에 넘쳐 있다.

내방식대로 내길을 간다 는 문화게릴라들의 야심찬 포부는 나는 누구와 닮았다는 말은 듣기 싫다 는 cf의 대사처럼, 신세대 문화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김용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