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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 서강대총장은 25일 여의도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주사파 관련발언 파문직후 주사파에 들어갔다 빠져나왔다는 학생으로부터 고백편지를 받았다"며 그 편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편지에는 이 학생이 주체사상에 빠져 운동권에 들어가게 된 경위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으며, 겉봉에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김베드로 라는 세례명이 쓰여 있었다. 다음은 이날 공개된 편지의 전문. <편집자주>

박홍총장님께. 이 글을 시작하면서 저는 제이름을 밝힐 수 없는 것을 먼저 양해드립니다. 고해성사를 받은 저의 신부님께서 사회적인 용기 있는 발언을 통해 고난을 겪으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몹시 가슴아프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극히 작은 일 하나를 이 글을 통해 하려고 합니다. 언론에서의 박총장은 저에게 신부님이기도 합니다. 계속 근거를 제시 못해 책임 없는 분이라고 합니다만, 제가 볼때 신부님의 말씀 자체가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치고 한국사회에 주사파가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제가 어떻게 주사파학생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훗날 많은 번민과 갈등 속에서 어떻게 헤어나오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고등학교시절 억눌렸던 자신을 풀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습니다. 입학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환영회를 거치면서 저는 과선배들로부터 잦은 술자리에 끌려다녔습니다. 술자리에서 선배들은 한국사회의 모순, 특히 독재정권과 재벌들의 민중수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대학생이라면 이 모순들에 대해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후 과의 학회에 신입생들 모두를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면서 커리큘럼을 선정해줬습니다. 그 내용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소위 운동권관련 책들이었고, 선배들은 학회시간에 독재정권과 재벌들로부터의 피해와 미국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차츰차츰 한국사회의 모순을 깨닫기 시작한 저는 운동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작년말쯤의 어느날 학과 선배가 비밀리에 저를 부르더니 우리학교에 조직이 있는데 거기 가입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습니다. 조직의 규약은 한국구조의 모순을 타파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몸바친다는 내용과, 이 내용을 절대 외부로 알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시쯤 서클룸에서 조직성원들이 모였습니다. 모두 ~명정도였다고 기억합니다. 그 조직책임자가 이름을 호명하고 나서 내용을 들려주면 따라하고 박수로 화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내가 아는 선배들은 대기업에, 정당에, 혹은 보좌관직에, 재야운동단체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졸업 뒤에도 제가 알고 있기로는 민주동우회 등에 가입한 선배들이 계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후 저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고, 선배들로부터 주체사상을 교육받기 시작했습니다.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사상 총서 등을 읽고 세미나형식을 취합니다.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하는 형식입니다. 반론은 가끔 제기되지만, 선배들이 반론을 정리해버립니다. 제 2년간의 교육기간이 정해집니다. 그러나 3학년무렵에는 후배들을 가르칠 자격(?)이 주어집니다. 수련회는 두달에 한번 정도를 갑니다. 주로 대성리-강촌 등지를 찾습니다. 도착하면 운동을 하며, 여느 대학생들과 다름없이 놀다가 밤이 되면 토론과 세미나를 합니다. 이때 주로 이용되는 문건이나 책들은 조직상부에서 내려보낸 정세분석과 한민전 방송중에서 새로운 것들을 중심으로 다루게 됩니다.

물론 다른과 친구들과 가명으로 만나기 시작했고, 학내집회와 가두집회시에 화염병을 들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학년-4학년을 거치면서 학생운동권의 지도부로 올라서게 되었고, 신입생이 입학하게 되면 오리엔테이션때 고등학교때까지의 주입식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한국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술자리를 마련하여 조직원으로 편입시키기도 했습니다. 아마 지금 모든 대학내에서 이런 지하조직이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대학내의 이와 같은 지하조직들은 대부분 활동을 대외적으로 합니다. 총학생회를 통제하거나, 서클을 통해서 활동하며, 지하조직인 언더에 가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대학내 뿐만아니라, 노동-재야단체-기업 등 사회 상당한 분야에 주사파가 존재한다고 확신합니다. 87년이후 각 대학 총학생회와 단과대간부 및 지하조직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만도 수천명이 넘어설 것입니다. 그들중 절반정도는 아직도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전대협을 비롯한 한총련 중앙간부들은 한민전이라는 대남공작조직의 방송을 듣고 투쟁노선을 작성하고 있으며, 공공연하게 주체사상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번 김일성의 사망으로 이들 조직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도했음은 물론입니다. 각 대학 총학생회와 한총련의 연대사업국이 있어 노동자-농민-운동단체와 긴밀한 연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자-농민운동단체에는 주사파출신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 거의 모든 투쟁내용은 한민전 및 북한의 방송을 통해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우루과이라운드 반대투쟁의 경우에도 농민운동단체의 핵심운동권이 결정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주체사상은, 아니 사회주의권은 이제 세계적으로 몰락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는 사상이지만, 사실 그 핵심은 수령관으로 수령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혁명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혁명을 위해 인민들은 그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사파학생 설득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길이 진정 민족을 위한 길임을 신부님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학내에 만연한 주체사상의 풍조는 용기 있는 분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간의 독재정권이 주체사상을 양산해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 해결책은 박신부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대학의 스승들이 올바른 교육을 통해 찾아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젊은이가 있다면 마땅히 잘못을 깨우치고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새 삶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박신부님의 설득으로 제자신이 주체사상이란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고 새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사제로서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이 사회의 어둠에 빛을 던지시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글을 써드립니다. 많은 후배들도 하루속히 악의 구렁속에서 빠져나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