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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의 조창호씨(64) 북한 탈출-귀환 발표는 전례 없이 신속하고 친절해 언론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북한 탈출자 또는 귀환자의 발표에 있어 안기부는 통상적으로 두 가지 발표 패턴을 보여왔다. 사실관계와 인적사항만 한두줄 간단히 발표한 뒤 충분한 조사기간을 거쳐 당사자의 기자회견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밝히거나, 사안 자체를 일단 비밀에 부쳤다가 일정한 조사과정을 마친 뒤 일괄발표와 기자회견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너무도 달랐다. 수산청으로부터 조씨의 신병을 인도받은 뒤 불과 24시간만에 자세한 내용까지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조씨가 입원해 있는 병실의 문까지 보도진에게 활짝 개방, 기자회견을 허용하고 미리 찍어두었던 가족상봉 사진까지 각 언론사로 직접 배포했다. "아직 조사가 덜 끝났다"며 발표문이외의 추가 취재나 보도진의 접근을 일체 허용하지 않아왔던 과거의 안기부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태도였다. 왜 안기부가 이렇듯 이례적인 신속함과 친절을 보였을까.

정부는 현재 성수대교 붕괴라는 원시적이고도 충격적인 사고 앞에 당황하고 있다. 현정부가 과연 국가관리능력이 있느냐는 점에 대해서까지 의심을 받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는 형편이다. 안기부의 전례없는 조씨 귀환 전격 발표 및 친절한 서비스는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잠시라도 국민들의 관심을 성수대교에서 떼내어 극적인 조씨의 탈출 로 모아보려는 공작적 차원의 계산이 깔려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조씨의 북한탈출-귀환 뉴스는 물론 크고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어 발표해야할 만큼 시급한 뉴스 는 아니다. 국가의 공기관에 요구되는 신중함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두고 그의 탈출 동기와 자세한 탈출경위를 조사했어야 했다.

더욱이 조씨의 귀환 사실은 아직은 공표되어서는 안될 배후의 사유 들이 적지않게 남아있는 것으로 취재되고 있다. 안기부도 이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기부는 실무진의 의견도 무시한 채 상부의 지시 에 의해 발표를 일방적으로 강행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기부가 정치적 곤경에 빠진 정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성수대교 붕괴사건 호도용 으로 발표를 서둘렀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내정치공작에 관여하지 않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안기부가 추진해온 모든 개혁 노력들까지도 국민들 눈에는 호도용 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다. 신뢰 는 잃기는 쉬워도 되찾기는 힘든 것이다. <임동명 사회부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