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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가 김석철씨

꿈꾸는 한강 제언 1(21c 한강선언)
제2 한강기적 지금 시작해야 한다
인간-자연-도시 함께 숨쉬는 서울개혁을
  • 김석철

    발행일 : 1995.01.01 / 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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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개혁 청사진

    경복궁~남대문 수도상징거리 로

    법원~예술전당 새 문화가로 구축

    흩어진 공공시설 강변에 늘어서게

    건너는 다리에서 머무는 다리 로

    일 한강을 건넌다. 긴 교통의 연옥을 지난다. 도시에서의 움직임이 단순한 이동으로 전락되었다. 지루한 자동차의 행렬에 섞여 이 무정한 도시의 한 가운데를 지난다.

    서울은 이제 갈데까지 가고 있다. 다리가 무너지고, 지하철이 서고, 도시가스가 폭발한다. 앞만 보고 달리면서 사람과 자연을 배반한 탓을 이제 되돌려 벌받는 것이다. 인구 1천만이면 중세 도시 1백개가 넘는 숫자고, 로마제국의 수도 열 배 가까운 규모다. 자연을 근거하지 않고 확대된 도시는 빙하기를 맞은 공룡과 다를 바 없다.

    마지막 가능성

    30년 전 한강 연안 마스터플랜과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짜면서 나는 한강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었다. 당시 여의도, 강변 주거단지, 그리고 인천으로의 운하를 계획했었다. 한강에 책임을 져야할 일에 손을 댄 셈이다.

    그리고 10여년 뒤, 예술의 전당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강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서울시민 모두의 장소가 어디인가를 생각하면서 바로 한강이 그곳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함께 일하던 많은 외국 건축가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88올림픽 때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 상공을 다니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여의도 계획 당시 지도로만 보던 서울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보게된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한강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도시의 형식이며,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 서울의 마지막 장소였다.

    6백년만의 제자리

    신석기 시대부터 한강은 우리 한민족 삶의 근거였다. 1천년전 백제의 도읍이었다가 6백년 전 강북 사대문안으로 조선의 도성이 자리하면서 한강은 서울 밖이 되었다. 6백년 후 한강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것이 하늘에서 보였다.

    그 충격 이후 나는 자주 한강을 의미있게 다녀본다. 토요일마다 북한산 무학대사가 섰던 자리에서 서해로 가는 석양의 한강을 바라보고, 밤이면 강변 고수부지에 간다. 그믐날, 소리하며 역류하는 한강을 처음 보기도 했다. 동호대교 아래에 서면 교각 사이를 흐르는 깊은 곳의 강소리가 들려온다. 많이 한강다리를 걸어보았다. 반포대교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성수대교 위에서 보는 동트는 아침은 가히 장관이다.

    청계천이 복개되고, 고가도로가 놓일때 어느 누구도 서울의 과거와 미리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한강의 원류인 산과 강 사이의 흐름이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모두 차단되었다. 조선시대 가로망의 기본이었던 산과 강 사이의 샛강들이 도시에서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매일 한강을 넘는 정처 모르는 시간은 어디서 시작하는 것일까? 2만년 전 빙하기를 지난 한강변에 정착한 우리가 이제 세계로 나서려는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한강이 템스강이나 센강에 비해 너무 넓어 도시적이지 못하다는 말은 천만 인구의 스케일과 서울의 지리적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다.

    나일강 이외에 한강만한 문명적 크기를 가진 강이 없다. 나일강변의 수천년에 걸친 대장정을 이제 한강에서 다시 거듭할 수 있어야 한다. 한강에 천만 인구의 열망이 모여야 한다. 이곳으로 서울의 모든 장소가 비롯하고, 이곳으로부터 세계로의 길이 시작되어야 한다. 물길, 땅길, 하늘의 길이 하나의 지리적 사실로 거듭될 때 새 문명의 발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16면에 계속>

    <17면서 계속> 이 도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서울은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의 도시다. 건축가로서, 도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도시 서울에 대한 생각은 더욱 뜨겁다. 무언가 절실하게 하고싶다.

    정도 육백년을 기해서 3년전부터 30년 동안 함께 건축을 해온 건축가들과 정도 육백년 서울-도시선언 을 준비해왔다. 아직 결실은 없으나 이 도시에서 사는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 제안의 핵심적인 내용이 한강 이다. 한강이 원 토지형국의 제자리에 서게 될 때 서울에서의 삶이 보람과 진실의 것이 될 것이다.

    한강문명의 재탄생

    서울의 산과 도시공간과 그리고 지하로 잠적한 샛강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한강은 넘어야 할 강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영원한 마당,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인 것이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 만남의 시간과 공간을 한강이 갖고 있다. 휴전선으로 정치적 호수가 되어 바다로 가지 못하는 한강이 다시 바다로 갈 수 있어야 하고 복개되어 사라진 샛강을 지나 도시 한 가운데가 이어지게 하며, 한강변에 많은 공동의 장소가 세워져야 한다. 자연의 큰 흐름이 사람을 관통케 할 수 있을때 도시문명의 개화가 있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 은 이제 진실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어떻게? 나는 서울의 개혁을 위한 청사진 세가지를 우선 제안한다.

    첫째, 새로운 서울의 상징축을 한강과 통하게 설정하는 일. 둘째, 공공시설을 한강으로 유도하는 강변의 교두보 공간 구축, 그리고 세번째, 건축공간인 머무는 다리로서의 한강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먼저 한강으로의 상징축. 경복궁에서 남대문 사이를 서울대로로 만든다. 서울대로는 옛 도시 유적과 기왕의 공공시설을 문화 회랑으로 집합시킬 것이다. 다음으로 서초동 사법단지와 예술의 전당 사이를 강남의 새로운 문화 가로로 만든다. 강북과 강남의 이 두가로가 용산공원의 장대한 녹지를 가로질러 한강을 지나 이어지는 서울의 상징축을 구상한다.

    이 도시축상에 연결된 옛 도성과 기존의 도시 공공시설은 자연스럽게 한강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강남북 사방에 흩어진 공공시설을 강변에 새로이 만들어진 교두보 공간과 연계시켜 한강변에 서울의 모든 공공시설이 모습을 드러나게 하자는 것이다.

    도시 상징축 구상

    중앙박물관, 문화단지, 정보단지 등 새로이 지어지는 공공 공간은 강변과 이어진 땅에 건설한다. 이럴때 한강변에 서울의 공공시설 대부분이 실지의 모습으로 흑은 교두보의 상형문자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한강을 서울의 중심에 세우는 작업이다.

    세번째, 새로운 한강의 다리를 제안한다. 생활의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서의 한강 다리를 생각한다. 한강을 서울시민의 일상생활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피 렌체의 베키오 다리. 베니스의 리알토 다리 같은 실질적 일상기능을 가진 한강로를 세운다. 이 다리는 사람이 머무는 다리다. 다리를 지나서가 아니라 다리 위에서 도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강상에 솟은 건축으로 이어지는 브리지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건축인 다리이기도 하며 강위로의 흐름이 시작되는 계류장이기도 하다. 이 다리로부터 강변의 교두보 공간이 연결된다. 도시 도처를 헤매던 인구가 한강 위를 다니고, 한강 위에 머무를 것이다.

    서울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 강의 도시, 한강의 도시다. 우리의 일상이 살게 될 수상 도시로 서울을 확대해야 한다. 한강변이 도시의 모든 공공시설을 담고, 새로운 도시축을 통해 옛도시와 새 도시의 한 가운데로서의 도시공간이 바로 한강이어야 한다. 한강 위에 동시동선의 상당 부분이 유도될 때 우리 서울에서의 사람들 움직임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고 그 자체가 삶의 아름다운 현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은 가장 많은 문제를 안고있는 도전의 도시다. 한강을 서울의 대공간으로 하여 역사적 도전을 시작하는 일은 21세기 도시의 한 예언적 제안이 될 것이다. 역사유적과 시민의 공간, 천혜의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도시적 실체로 움직일때 서울은 되살아난다. 한강은 서울 새로운 탄생의 탯줄이다. 이제 한강의 기적이 시작되어야 한다. <아키반 대표>

    기고자:김석철  본문자수: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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