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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 3( 한국대통령 시리즈)

독립정신
감옥서 저술한 이승만사상 압축판
민주제 지향 미 공화정 등 상세히 서술
"조선사람들 모두 우물한 개구리외다"
민중계몽-자력갱생 촉구 러-일 전쟁직후 집필, 미 밀반출 6년뒤 발간
    이한우

    발행일 : 1995.01.12 / 1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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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의 옥중기이자 근대화에 관한 구상을 담은 첫번째 저서인 독립정신 . 그의 노선에 비판적인 학자들까지 주저없이 명저로 꼽는 책이면서도 이제는 잊혀진 고전 이 돼버린 독립정신 은 이승만의 운명과 부침을 함께 했다. 이 책은 일제때 국내에서는 판금서적이었지만 미주를 중심으로 폭넓게 읽혀 그가 독립운동가로서 명성을 얻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김구에게 백범일지 가 있다면 이승만에게는 독립정신 이 있다. 그러나 백범일지 는 지금도 국민필독서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반면 독립정신 은 장년과 노년세대의 기억 속에만 있을 뿐 더 이상 읽히는 책이 아니다.

    쟁심같이 한책

    이승만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후 절판됐던 독립정신 은 93년 1월 판형을 바꿔 정동출판사에서 재출간됐다. 이 회사 방정동 사장은 "초판 2천부를 찍었지만 만 2년이 넘은 지금까지 재판을 찍지 못했다"고 말했다. 초라한 재출간이다.

    비운의 명저 독립정신 은 이렇게 시작한다. "옥중에 지루한 세월이 거연히 7년이 된지라 천금광음을 허송하기에 애석하여 내외국 친구들의 때로 빌려주는 각색 서책을 잠심하여 고초와 근심을 적이 잊고자 하나 이따금 세상형편을 따라 어리석은 창자에 울분한 피가 북받침을 억제할 수 없어 (중략) 수년동안 신문논설 짓기로 적이 회포를 말하더니 중간에 무슨 사단이 있어 그것도 또한 폐지하고 있을 차에 러일전쟁이 벌어지는지라 비록 세상에 나서서 한 가지 유조한 일을 이룰만한 경륜이 없으나 이 어찌 남아의 무심히 드러앉았을 때리오. "

    다소 긴 이 글은 이승만이 집필동기를 밝힌 부분이다. "강개격분한 눈물을 금치 못하여 글 만들기를 시작"한 이 책의 결정적 집필동기는 인용문에 있는 대로 러일전쟁의 발발이다. 그 전쟁은 1904년 2월 10일에 터졌고 집필을 시작한 날은 2월19일이다. 이승만은 청일전쟁에 이어 10년만에 터진 한반도 주변 두 열강의 전쟁을 대한제국의 앞날에 불길한 징조로 인식했던 것이다.

    21세기를 불과 5년 남겨둔 현 시점에서 90년전에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며 쓴 이 책을 새롭게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이승만의 청년기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결정적 자료가 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그가 당대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조국이 나아갈 길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소상히 알 수 있다.

    자유-평등 강조

    1894년 과거제도가 폐지됐다. 야심만만한 청년 이승만에게 준 충격은 컸다. 그는 청년이승만 자서전 에서 "1894년 청일전쟁이 끝난 직후에 낡아빠지고 많이 악용되어오던 과거제도가 폐지되었는데 이 조치는 전국 방방곡곡에 묻혀 있던 야망적인 청년들의 가장 고귀한 꿈을 산산이 부수었다"고 적고 있다. 그 청년들 중에 자신도 포함돼 있었음은 물론이다.

    1894년 11월 이승만은 서당친구 신긍우의 권유로 배재학당에 입학했다. 세계의 주도권이 서구문명에 있음이 분명해진데다 과거제까지 폐지된 상황에서 배재학당 입학은 전통사회에서 출세가 막힌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 이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었다.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영어와 기독교리를 배웠다. 1895년 귀국한 서재필박사로부터는 1년 이상 세계지리, 역사, 정치학 등과 토론술 웅변술을 배웠다.

    토론과 웅변의 주제는 대부분 자유, 평등, 권리 등 근대시민의 기본권에 관한 것이었다. 독립정신 에 담겨있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강조, 세계지리와 정치체제,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등은 이 무렵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그에게 당시 조국의 제반현실은 한 마디로 한심 할 뿐이었다. 당시 실정에 대해 이승만은 독립정신 에서 "일식, 월식, 뇌성벽력, 천둥지진의 떳떳이 정한 이치를 다 재앙이라 변괴라 하여 혹 기기묘묘하게 제도 지내며 화를 면하고 복을 구한다 하여 세상에 어리석고 요사한 일을 못한 것이 없이 하여 각국 사람이 흉보고 비웃는 줄 전혀 알지 못하고 도리어 나의 아는 것과 행하는 것만 세상에 제일이라 하니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며 하늘이 적다 하는 것이 어찌 우물 밖에 있는 자의 웃을 바가 아니리오"라고 비판하고 있다.

    구어체 국문사용

    독립정신 에서 이승만이 대안으로 생각한 정치체제는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권이 보장되는 입헌군주제나 민주공화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제도를 전제군주제, 입헌군주제, 민주공화제로 나눈 다음 전제군주제는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영국이나 일본같은 입헌군주제를 당시의 현실에 맞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총 52장으로 된 이 책에서 영국, 프랑스등 다른 나라에는 1장 정도만을 할애하면서도 그가 민주공화제 로 분류한 미국에 대해서는 무려 4장에 걸쳐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그가 궁극적으로 생각한 것은 군주가 없는 민주제 즉 공화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이승만이 책의 서문에서 완성된 날짜를 건국 4237년6월29일 이라 하여 당시 흔히 사용하던 조선왕조 개국기원이나 광무년호 대신 단기를 사용한데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둘째 30세때 집필한 이 책이 그후 이승만의 항일운동과 정치활동에 비추어 얼마나 일관된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독립정신 이 서양에 관한 몇가지 책을 적당히 읽고 짜깁기한 어설픈 저작인지 아니면 충분한 사색을 거쳐 나름의 정치철학을 정립한 것인지를 검증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자에 가깝다.

    민중계몽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애당초 "지명과 인명을 많이 쓰지 않고 항용 쉬운말로 길게 늘여 설명함은 고담소설같이 보기 좋게 만듬이요 전혀 국문으로 기록함은 전국에 수효많은 인민이 보기 쉽게" 하려고 저술된 것이 독립정신 이다. 이 책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강조해 국민 각자의 권리의식을 높이고 새로운 정치제도를 모색하기 위해 세계지리, 자연과학, 각국의 정치제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등을 상세히 설명한 다음 가장 중요한 결론부분인 독립주의의 긴요한 조목 에서 구체적으로 주장하는 바를 내놓는다. 그것은 모두 여섯가지다. "첫째 세계와 마땅히 통하여야 할 줄로 알 것이라, 둘째 새 법으로써 각각 몸과 집안과 나라를 보전하는 근본을 삼을 것이라, 셋째 외교를 잘 할 줄 알아야 할지라, 넷째 국권을 중히 여길 것이라, 다섯째 의리를 중히 여길지라, 여섯째 자유 권리를 소중히 여길지라. " 이것만 보더라도 이승만의 정치철학은 통상과 외교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체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우리가 지난 한세기동안 개화, 서구화, 산업화등등의 이름으로 추진했던 근대화의 역사에서 독립정신 이 갖는 정치사상사적 의의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생활면에서 이승만은 철저하게 조선의 선비로서 살았다. 어려서 한학을 깊이 공부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인관계나 사회적 의식면에서는 철저하게 서구지향적이었다. 특히 미국지향성이 강했다. 그는 전통중심주의나 동양과 서양의 어설픈 절충주의와는 단호하게 결별했다. 이 점은 이미 독립정신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 열려가는 세상에 홀로 어둡고자 하나 동터오는 햇빛이 비치지 않을 곳이 없을지라. 종시 이 형편은 모르고 돋는 해를 가리려 하는 것이 어찌 어리석지 않으리오. "

    "근대화운동 성서"

    그리고 서구지향적이면서도 우리 민족의 가능성에 대해 윤치호, 최남선등과 같이 비관적 전망과 논리에 젖지 않고 민중계몽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력갱생을 끝없이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개화론자들과는 구분된다. 그런 점에서 독립정신 은 유길준, 김옥균, 서재필등과 같은 개화론이 근대민족주의로 체계화되는 전환점을 이룬 기념비적 저서라는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들과 이승만이 개화를 높이 외친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할을 대하는 면에서 이론적으로나 실제의 삶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보인 것은 소박한 개화론과 근대민족주의의 차별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점과 관련해 로버트 올리버박사가 그 책을 "한국근대화운동의 성서"라고 표현한 것은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정치사상사를 다루는데 있어 독립정신 은 언급되는 경우조차 거의 없는 것이 학계의 연구경향이다. "당초에 무슨 생각이 있었던지 모험으로 저술한" 이 책은 집필이 진행되는 동안 부분적으로 비밀리에 지인들을 중심으로 읽히기는 했지만 책이 완성된 1904년에는 국내에서 출판이 불가능했다. 동료 박용만이 비밀리에 들고 나가 미국에서 출판하려고 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출판치 못하다가 이승만이 도미해 박사학위를 받은 1910년 2월10일에야 로스앤젤레스 대동신서관에서 발간할 수 있었다. 집필을 시작한지 6년만이자 한국이 독립 을 잃기 6개월 전이었다. <이한우기자>

    기고자 : 이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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