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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1929년 10월8일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서울과 평양이 축구로 우의를 다지는 제1회 경평전의 막을 올렸다. 당시 조선일보 안재홍(안재홍) 부사장은 개막식 축사에서 “조선의 양대 도회인 평양과 경성 두 도시의 친목을 위하여 실로 축복하여 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창간 80주년을 맞아 축구원로 김화집(91)옹을 축구스타 고종수(22·수원 삼성) 선수가 만나 경평전과 한국축구의 뿌리를 찾아보는 인터뷰를 기획했다. 김옹은 ‘경평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한국축구 1세대다. /편집자

―작년 8월 프로축구 올스타전 때 선생님의 시축모습을 봤습니다. 여전히 건강하시죠?

“그럼. 오늘도 광명시에 있는 집에서 전철을 타고 광화문 조선일보를 찾아왔지. ”

―저도 경평전(경평전)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축구 뿌리가 여기서 시작됐다고들 하는데 경평전은 어떤 대회였습니까.

“일제 때인 1929년 조선일보사 주최로 서울과 평양이 축구대결을 벌였지. 당시 서울은 경성이라 불렀어. 그래서 두 도시의 앞글자를 따서 ‘경평전’이 된 거야.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조선일보는 최고 신문사였거든. 가장 큰 신문사가 여는 대회인 만큼 인기도 대단했지. 비록 2회 대회로 끝났지만 한 해 세 차례씩 경기를 벌인 ‘경평전’은 당시 최고의 스포츠행사였어. ”

―선생님도 그때 뛰셨나요.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1학년이던 30년 제2회 대회 때 경성팀 13명 엔트리에 포함됐지. 그러나 실제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어. 그 후 33년에 재개된 경평대항전부터 나갔지. 그리고 46년 해방직후에 열린 경평전서는 주심을 봤어. ”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 주시죠.

“기미년 독립운동이 있은 다음해인 1920년 조선체육회가 창설됐어. 당시 체육계 지도층 인사들은 모두 선각자들이었고, 이 분들은 체육을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는 수단이자, 원동력으로 생각했지. 경평전은 조선축구협회가 만들어진 1933년보다 4년이나 앞섰어. 조선일보 역시 축구를 통해 민중을 단합시키고, 청년들에게 민족정기를 함양시키겠다는 목적이었지. ”

―대회 관중은 얼마나 됐습니까.

“1929년 제1회 경평전은 휘문고보(현재 서울 계동 현대그룹 본사위치)에서 열렸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 그라운드 주변에 앉고 서고 해서 운동장에 발디딜 틈이 없었으니까. 입장료는 30전으로 설렁탕 한 그릇 값이었어. ”

―그 때 축구경기는 지금과는 다른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당시 내 포지션은 라이트윙이었어. 나는 평양 광성보통학교-배재고보-보성전문을 거치면서 내내 이 위치를 맡아봤지. 윙은 보통 ‘날개’라고 불렀지만 ‘널포’라고도 했어. 널포는 폭넓게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야. 헤딩슛은 ‘두탄(두탄)’이라고 했지. ”

―축구공은 어땠어요.

“당시의 공은 지금보다 훨씬 커 농구공보다 조금 작을 정도였지. 공무게도 500~600ｇ으로 지금보다 무거웠고 모양도 동그랗지가 않은 ‘호박공’이었지. ”

―그때도 인기스타들이 있었겠죠. 팬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경성팀에서는 이영민(이영민) 이혜봉(이혜봉), 평양팀에선 김영찬(김영찬) 박의현(박의현) 등이 공을 잘 찼어. 특히 이영민은 야구와 육상도 잘 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었지. ”

―경평전 때는 평양상가가 철시를 하고 경기장에는 기생들이 타고온 인력거가 그득했다면서요. 축구장에 여자관중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서울에는 여자관중이 거의 없었어. 평양은 10분의 1쯤 됐나. 평양의 숭실이나 광성고보가 경기를 하면 숭의여고과 정의여고가 각각 두 학교를 응원했던 기억이 나네. 또 평양에는 기생학교인 ‘권번(권번)’이 있었는데 기생들은 자신의 얼굴을 알릴 목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축구장을 찾아왔지. ”

―요즘 선수들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이동국이나 안정환도 잘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관심이 많아. 지금 자네가 서는 자리는 내가 전문으로 하던 위치거든. 자네는 내가 경기를 보면서 패스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 패스하고, 굴려주든지 중거리로 날려줬으면 할 때 꼭 그렇게 해. 10분의 8은 나하고 생각이 같다고나 할까. ”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골드컵이 있었잖아요. 그 경기들은 보셨나요.

“요즘 선수들은 돈을 더 사랑하지, 나라는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캐나다하고 경기 때 보니 슬라이딩태클이 들어오면 다칠까봐 몸을 사리더군. 투신하는 정신이 없어. 월드컵이나 올림픽같은 대회나, 대표팀 경기는 나라가 지고 이기는 문제야. 무엇보다 애국심이 첫째야. 우리보다 기술이 낫고, 체격이 좋은 상대들과는 프랑스 월드컵 때의 ‘붕대투혼’정신으로 무장하지 않고는 앞으로도 이기기가 힘들거야. ”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할텐데요. 오랜 축구경험으로 해주실 말씀이 있을 텐데요.

“우리 때는 설렁탕이나 냉면 한그릇 먹고, 전차타고 다니면서 경기를 했어. 물론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 그러나 추울 때 해외나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전지훈련을 하는 것은 반대야. 아프리카선수들은 35~40도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야. 북유럽은 그 반대고. 축구는 언제, 어떤 상대를 만날 지 몰라. 운동하기 좋은 장소나 찾아다니고 해서는 강한 팀이 될 수 없어. ”

―선생님, 오랜시간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사시고, 혹시 제가 2002년 월드컵에서 뛰게 되면 잘 지켜봐 주십시오.

“종수에게 당부할 게 있어. 운동선수라면 먼저 자기 몸에 대한 외경심을 가져야 해. 또 경기 때는 늘 최선을 다하는 성심을 가져야해. 이 두가지를 항상 명심해. 이런 마음만 있으면 월드컵때 이 경기장서 멋진 어시스트도 하고 골도 넣을 거야. ”

/정리=옥대환기자 ros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