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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열전 (5)

김미화
“저 화장품 CF도 찍었어요… 음메 기살어!”
    한현우

    발행일 : 2000.07.11 / 느낌 / 4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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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KBS 코미디언 시험장에 교복 차림 작달막한 여학생이 들어섰다. “학생은 안된다”는 말에 발길 돌린 이 여학생은 이듬해 졸업과 함께 관광회사 경리직원으로 취직했다. 똘똘하게 일 잘하던 그는 그러나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고 MBC 라디오 개그맨으로 변신했다. 그가 김미화(36)다.

    “좋은 직장이었죠. 그런데 너무나 개그맨을 하고 싶어 그만뒀어요. ” 하지만 개그맨 생활은 기대 이하였다. 당시 여자 개그맨은 소품 취급 당했다. “게다가 ‘못 생겼다’며 더더욱 상대도 안해주더군요. ” 보름간 받은 출연료가 9000원이었다. 김미화는 다시 관광회사로 돌아갔다.

    “그런데 어느날 누가 찾아와 ‘혼자 개그맨 시험 볼 자신없다. 같이 나가자’고 해요. 그 다음 날이 KBS 개그맨 시험이래요. 그래서 같이 나갔는데, 덜컥 은상을 받았어요. ” 그렇게 시작한 ‘개그맨의 길’이 올해로 만 17년이다. 80년대 말 ‘개그우먼’이란 말이 등장했지만, 끝끝내 코미디무대를 지키는 개그 ‘우먼’이 별반없는 우리 현실에서 좋은 전범(전범)이다.

    김미화는 인터뷰 장소를 묻는 기자에게 “‘예술의 전당’에 함께 가자”고 했다. ‘2000 한국영화 명배우 회고전―서영춘’이 열리는 곳이었다. 예술의 전당 앞 손두부 전문 음식점에서 만났다. 화장기 하나 없이 검정 바지에 흰 긴 팔 니트 차림이었다. 가느다랗고 긴 손이 도드라졌다.

    “사진도 찍어요? 화장 안하고 왔는데…. 그나마 머리를 만져 다행이네. ” 양쪽으로 삐쳐올린 이른바 ‘바람머리’다. “영화 ‘프렌치키스’에서 멕 라이언이 했길래 제가 바로 따라했거든요. 그런데 변두리에서만 ‘김미화 머리’라더라구요. 그 다음 최진실이 따라하니까 다들 ‘최진실 머리’라고 하데요, 참. ”

    음식 나올 때까지 앞 사람 수저 먼저 챙기고 반찬도 앞 사람 쪽으로 밀어놓았다. 나설 때도 집에 온 손님 대접하듯 구두 코를 현관 쪽으로 돌려줬다. 그에게 먼저 예의를 갖추려면 엔간히 눈치도 빨라야겠다 싶었다. 어느새 챙겼는 지 이쑤시개를 내밀며, “사이 좋게 이나 쑤시지요” 하며 크크 웃었다.

    근처 커피숍 창가에 앉았다. 점심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맞아” “아니야” 하고 한마디씩 하며 창 밖을 지나갔다. 고(고) 서영춘씨 이야기가 나왔다. “84년인가 서영춘 선생님 댁에 병문안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저를 가리키면서 ‘너, 참 잘하더라’고 하시더라구요. ”

    서영춘씨 장례식 이야기를 하면서 김미화는 ‘불경스럽게도’ 킬킬거렸다. “추모사를 하는데, ‘고인의 작품으로는 〈살살이 몰랐지〉 〈개천에서 용났네〉 〈산에 가야 범을 잡지〉가 있습니다’ 하는 거예요. 다들 웃음 참느라고 혼났죠. ” 그러더니 “저도 죽으면 ‘고인의 유행어로는 ‘음메 기죽어’ ‘음메 기살어’…” 하면서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입이 크다. 한번 웃으면 모든 치아가 다 들여다보일 정도다.

    “코미디언이 이뻐서 뭐해요. 개성있으면 되지. 콤플렉스 같은 거 없어요. 그런데 하도 입 크다고 놀림받아서 그런지, 어렸을 때 사진 보면 죄다 입 다물고 찍었더라구요. ” 그녀는 한동안 ‘그래 나 못생겼다, 왜’ 식으로 말을 잇더니, “그래도 이 얼굴에 화장품 CF도 찍었는데, 치!” 했다. 8월 말쯤 그가 모델로 나선 화장품 CF가 방송을 탄단다.

    KBS 개그맨 입사 동기인 김한국과 시작해 인기 끈 게 ‘쓰리랑 남매’다. 86년 ‘쇼 비디오자키’에서 ‘쓰리랑 부부’로 바뀐 이 코너에서 김미화는 전성기를 맞았다. “제가 길창덕씨 만화 ‘꺼벙이’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일자 눈썹 그리고 야구방망이 들고 나갔죠. 좋아들 하시더라구요. ”

    SBS 개국과 함께 옮겼다가 다시 KBS로 돌아오면서 프로그램 기획에 적극 참여했다. 그래서 만든 게 ‘서세원 김미화의 코미디 세상만사’였다. 그때 “코미디가 PD와 작가 몫만은 아니구나”하는 걸 깨달았다 한다.

    그는 침체해있던 KBS 코미디를 부활시킨 ‘개그콘서트’ 기획자이기도 하다. “제가 경명철 주간(현 예능국장)께 ‘두 달만 시간을 달라. 내가 코미디 한번 해보겠다’고 했어요. ” 이때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 전유성이다. 그는 당시 백재현과 함께 대학로에서 개그공연 중이었다.

    “인기 비결이 뭐냐” 했더니 서슴없이 “열심히 하니까” 하고 말했다. “이 길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죠. 무슨 철판구이 같은 데서 이름 빌려달랄 때도 단호히 거절했어요. 저는 MC를 해도 항상 코미디에 한발 걸쳐놓고 있었어요. ” 지금 그는 ‘개그콘서트’ 외에 ‘체험 삶의현장’, SBS ‘뷰티풀 라이프’에 고정출연 중이다.

    “결혼하셨느냐”고 묻자, “그럼요, 벌써 14년 됐는데요. 딸도 둘이에요. ” 했다. 하긴 사람들은 김미화 사생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대신 그의 웃음에는 늘 관심이 있었다. 그게 그의 장수 비결 아닌가 싶었다.

    함께 ‘서영춘 회고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에 갔다. 서영춘씨 영화를 소개하던 사회자가 얼른 알아보고 “아, 김미화씨도 오셨네요” 했다. 객석에서는 환호 대신 반가운 미소가 번졌다. 다들 원래 알던 사람 만난 것처럼.

    /한현우기자 hwhan@chosun.com

    기고자 : 한현우
    장르 : 연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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