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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흔 살 후반에 든 ‘줄눈공’ 이상일(46)씨의 꿈은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과 꼭 닮았다. 돈 벌어 결혼하고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그는 홀어머니와 단둘이 양재동의 속칭 ‘산마을’ 무허가 비닐하우스에서 산다. 예금통장의 잔액은 144만여원. 일할 기회가 없어 ‘반 실업’ 상태다.

“됫박 쌀 사먹던 것만 조금 나아졌지. ” 어머니 여옥련(76)씨가 말했다. 이씨는 “(됫박 쌀을 사먹었다는 말은) 돈이 없어 쌀을 한 되씩밖에 못 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쌀 1되는 1.8ℓ, 얼추 0.8kg 정도. 이씨 집 뒤주 안에는 쌀 20kg과 10kg 포대가 들어 있다. 이 중 10kg짜리는 자선단체의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이씨의 직업 ‘줄눈공’은 벽돌을 쌓거나 타일을 붙일 때 생기는 이음매에 시멘트를 채워 넣는 일꾼을 말한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지만 10년 동안 열심히 줄눈공 기술을 익힌 덕에 공사 현장에서는 ‘베테랑’ 대접을 받는다.

많이 받으면 일당 10만원. 이 정도 수입이면 산술적으로는 먹고살만할 텐데, 이씨 모자는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왜일까.

작년 365일 중 이씨가 일을 나간 날은 70일.

그는 볼펜으로 꼼꼼히 쓴 일정표에서 일한 날을 꼽았다. 충주구치소 외벽공사일로 비교적 일이 많았던 5~8월 사이 일정표를 보면, 4개월 동안 일한 날이 29일. 7월엔 비가 많다고 하루도 일을 못 나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기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재작년에는 120일 정도 일을 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줄눈공은 중소 규모 공사가 많을 때 일감이 늘어나는 전형적인 ‘밑바닥 경제’의 숙련공이다.

이씨의 여행용 손가방은 항상 옷가지와 여행용 세면도구로 채워져 있다. 일을 함께 나가는 줄눈공 팀장이 연락을 주는 순간, 즉시 떠나기 위해서다. 이들은 팀장이 일감을 연결해야 일을 나갈 수 있는 팀 구조로 얽혀 있다.

하지만 여행가방이 이불 옆에 방치된 날이 지난 3일로 18일째다. 팀장은 지난달 23일 “경남 밀양에 일이 생길지 모르니 기다리라”는 연락을 준 뒤 무소식. 이러다가도 일감이 생기면 즉시 달려가야 팀에서 쫓겨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지도 못한다.

아침 6시 기상, 아침식사 후 인근 야산 산책, 점심식사 후 탄천에서 낚시, TV 시청, 저녁식사 후 다시 TV 시청, 취침…. 지난달 15일 경남 밀양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씨가 3일까지 반복한 ‘표준 일과표’다.

그는 “작년에 번 돈이 1000만원 조금 넘을 것”이라고 했다. 줄눈공 일로 번 돈 700만원 정도, 다른 막일로 번 돈과 어머니가 꽃장사를 해서 번 돈 등을 합친 금액이다.

어머니는 공사장 잡일, 식당일을 거쳐 지난해 봄까지 인근 주택가에서 꽃장사 좌판을 펼쳤다. 그렇게 산 어머니의 성한 이는 두 개뿐. 아들 이씨는 잇몸으로 김치를 씹는 어머니의 식사 속도에 맞춰 천천히 밥술을 떴다. 그는 “습관”이라고 말했다.

1958년 개띠 해에 이씨는 서울 서부이촌동 판잣집에서 태어났다. 그후 46년 동안 12번 이사하면서 판잣집과 지하실·비닐하우스 등 남들이 창고로 쓰던 공간에서 주로 살았다. “이씨네, 박씨네, 성씨네, 신씨네, 왕씨네, 다음 우면동 문씨네, 이씨네, 다음 신원동 단씨네, 다시 우면동 이씨네, 다음 또 이씨네…. ” 이씨는 과거 집 주인의 성씨를 또렷이 기억했다.

그의 아버지는 미군 쓰레기를 받아다 꿀꿀이죽(미군 음식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국밥 같은 음식) 가게 등 재활용 업소에 파는 화물차 운전기사였다.

“어느 날 남편의 쓰레기 일감이 끊어지면서 이촌동 판잣집을 팔고 서초동(당시 영등포구 서초리)에서 남의 집 살이를 시작했어요. 1970년 남편이 고혈압으로 세상 떴을 때 영구차를 동회에서 빌려 쓸 정도로 가난했지요. ”(어머니 여씨)

이씨는 결혼을 못한 것도 역시 ‘일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경일을 하던 서른 직전에 연애를 한번 했는데, 장래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사귀던 여자가) 딴 사람과 나 몰래 선을 보는 것도 봤거든요. 알고도 모른 척하고, 네 맘대로 선택하라고 했지요… 그 다음엔 (결혼에)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고, 쓸 일도 없고…. ”

이씨는 ‘일복(福)’이 없는 것을 대물림하고, 그래서 가난도 대물림하는 것일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1년에 200일 이상 일할 수 있으면 돼요. ” 함께 산마을에 사는 막일꾼 강희복씨와 철물점 주인 최대식씨도 같은 말을 했다. “가난은 일감이 많아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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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서울 비닐하우스촌 가구주 직업

<그래픽. 산마을 비닐하우스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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