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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봉(69) 할아버지는 나이 스물다섯(1960년)에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 첫발을 디뎠다. 고향 장수에서 어린 시절부터 부잣집 머슴살이를 하던 그였다. 검은 탄 속에서 10년 정도만 일하고 돈을 모아 새 인생을 살려는 계획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최 할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 돼 44년째 탄광촌을 떠나지 못했다. 할아버지 왼쪽 다리의 무릎 밑 절단 부위는 매끈한 피부로 잘 감겨 있지만, 말단 부위에 아직도 신경이 살아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의족을 끼고 약간만 걸으면 신경이 눌려 심한 통증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52세 정년까지 갱도 속에서 일한 전형적인 탄광노동자였다.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함태탄광과 태백시 철암동 일구탄광(강원탄광의 하청 탄광)을 거치면서 인부 7명을 데리고 갱구에 들어가 석탄을 실어 날랐던 작업반장이었다. 갱도를 뚫으면 350ｍ까지, 바위가 막히면 옆으로 파고 들어가 보통 하루에 30탄차(탄차당 1ｔ) 분량의 석탄을 캤다고 그는 말했다.

이 때문에 그가 일하던 태백시 철암동 남쪽 일명 ‘돌꾸지’ 지역(강원탄광 막사가 있던 곳)은 땅 속에 고불고불한 갱도 공간이 어지럽게 이어져 있다. 폐광(1993년)이 된 지금도 갱도 때문에 지반이 약해 건물을 짓기 힘들 정도로 캐고 또 캤다.

최 할아버지는 한 번 일을 나가면 8시간씩,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일요일도 쉬지 않고 탄을 캐 날랐다. 탄광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호경기에 그도 “탄가루를 많이 먹어” 진폐(폐 속에 탄가루가 들어간 병)를 앓았다. 진폐는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어 합병증을 일으켰을 때만 병원 입원이 가능하다.

그래도 이렇게 일하면 쌀 석되 정도 살 수 있는 수준의 일당을 받았다고 했다. “돈을 못 모아도 식구들이 배고프다는 소리는 안했다”고 그는 말했지만, 곁에 있던 아내 윤광자(60)씨는 “늘 궁색했어요”라고 남편 말을 가로막았다. 자녀는 4남매(2남 2녀).

28년 동안 위험하다는 갱도를 누비면서도 사고 한 번 안 당한 그였다. 하지만 정년 퇴임 뒤 다섯 식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강원탄광 하청 연탄공장에서 일하다 “어” 하는 사이에 석탄을 분쇄하는 분탄기에 빨려 왼쪽 발목을 잘렸다. 아킬레스건(腱)만 안잘린 상태였다고 했다.

“너무 아파 잘라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병원에선 안 된다 이겁니다. 자르다가 큰 사고 난다면서 그냥 붙여 놓았어요. ” 결국 10년 후인 1998년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무릎 밑을 잘랐다.

28년을 석탄과 싸우고, 16년을 통증과 싸운 탄광 인생 44년이었다. 하지만 가난은 여전히 그의 주위를 맴돈다. 연탄공장에서 산재(産災)를 당한 뒤 꾸준히 나오던 휴업 급여와 장애 보상금도 2002년 10월 치료가 끝났다는 이유로 중단됐다.

‘폐광촌’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는 석탄과 싸우다 패배한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일생 탄광촌을 벗어나지 못한 정승옥(67)씨는 탄광 다이너마이트 폭발 때 충격으로 왼쪽 청력을 잃은 뒤 현재 진폐로 고생하고 있다. 심한 근시로 왼쪽 눈이 먼 이태복(57)씨는 2002년 제련소(석탄 관련 기계를 제작하는 곳)에서 일을 하다 화학약품 통에 빠져 정상적인 노동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철암역 근처에 사는 이상재씨 부부는 남편은 신부전증, 아내는 췌장암 수술을 받고 국가 보조금 월 60만원으로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