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서울 남대문로5가 이병렬(60)씨는 집 밖으로 한번 외출하려면 온몸에서 비지땀을 흘려야 한다. 무릎 아래 의족을 착용한 2급 지체장애인 이씨는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변 골목에 위치한 주택의 1ｍ70cm 깊이의 ‘땅속’에 산다.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을 내고 빌린 1.5평짜리 방.

지하방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탁한 실내공기라고 이씨는 말했다. 겨울은 연탄가스를 걱정해야 하고, 여름이면 습기로 눅눅해진 벽에 물이 스며들고 벽지가 뜬다. 얼마 안 가 곰팡이가 끼기 시작한다. 그는 “겨울에는 연탄가스로 내내 머리가 지끈거리고 여름은 곰팡이와 함께 살아야 한다”며 “여름엔 아무리 빨래를 해도 방 안에서 냄새가 배어 못 입는다”고 말했다.

유일한 환풍구는 천장 아래에 붙어 있는 가로 세로 110cm×22cm 크기의 작은 창문. 이마저도 먼지 때문에 마음대로 열어놓지 못한다. 창문 바깥은 골목 바닥으로 이어져 있어 온갖 먼지와 음식냄새, 자동차 배기가스가 밀려든다. 이씨는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도 먼지가 더 심하고 어떤 때는 지린내도 난다”며 “창문을 닫으나 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일 오후 이씨는 벽을 짚어가며 기어오르듯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힘을 주어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는 그의 이마에선 땀이 솟았다. ‘지상’에 있는 세면장과 화장실을 드나들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계단. ‘지하 생활’ 3년째인 그는 “화장실 가다가 몇 번을 혼자 아래로 굴러떨어졌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하 갱도처럼 땅밑으로 들어가 있는 그의 방은 밤이고 낮이고 전깃불을 켜지 않으면 칠흑같이 어둡다. 그는 혼잣말로 “굴속이 따로 없어,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니까…”라고 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한양대 환경 및 산업의학연구소 연구팀이 찾은 서울 휘경동 이상근(44)씨의 집. 반지하인 이곳에선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났다. 창문이 있었지만 열어보니 옆 건물의 바닥쪽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환기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안방의 장판을 걷어 보니 겨울인데도 물이 새어 들어 군데군데가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이씨는 “지하에서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 비염이 심해졌고 기침도 끊이지 않는다”며 “자고 일어나도 항상 몸과 머리가 무겁다”고 말했다. 이씨의 딸 성옥(10)양은 “친구들처럼 집안에서 바깥이 바라다보이는 집에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서울 방학동에서 옛날 방공호를 개조한 집에 살고 있는 박인순(여·46)씨. 보증금 220만원에 월 20만원짜리 지하방에서 박씨는 5년째 살고 있다. 박씨의 아들 민경우(가명·18)군은 피부병이 낫질 않는다고 했다. 박씨는 “지하에 살면서부터 아들의 등과 다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붉은 색 반점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창문은 주차장 바닥으로 나 있어 배기가스가 들어올까봐 여름에도 닫아놓아야 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도봉·노원구 일대 지하방을 조사한 한양대 환경 및 산업의학연구소에 따르면 지하방 실내공기 오염은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휘경동 이씨 집에서 낙하세균포집법으로 채취한 미생물 양은 60cfu/㎥. 일반 가정의 3배다. 상봉동에 사는 송송자(73) 할머니 집은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1500ppm으로 일반 실내공기 기준치(1000ppm)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에 깔아 놓은 요는 겨울인데도 눅눅했고 이불을 들추자 바퀴벌레 3~4마리가 기어나왔다.

전형진 연구원은 “지하방에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고 미생물의 양이 많은 것은 환기가 제대로 안 되고 습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윤신 한양대 환경 및 산업의학연구소장(산업의학과 교수)은 “국내에선 아직까지 지하 생활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폐암을 일으키는 방사능 물질인 라돈처럼 지하 공간에서 특히 위험할 가능성이 높은 물질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흔기자 dhshin@chosun.com

최보윤기자 spica@chsoun.com

<그래픽> 박인순씨 지하방 단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