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김영삼(金泳三·YS)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의 ‘미림’팀장이던 공운영(58)씨는 26일 “(도청) 범위는 대통령 빼놓고 최상층부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밝혔다. 미림팀의 도청 대상이 정계 거물, 재벌, 언론사 사장 및 사주 등 최상층부 유력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공씨는 이날 오후 A4용지 13쪽 분량의 자술서를 통해 “1992년도 미림팀장으로 임명받고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일부 인원을 직접 선발, 훈련 및 교육을 시킨 뒤 본격 도청 업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공씨는 또 “YS 당선과 함께 팀 활동이 한때 중단됐다가 94년에 미림팀을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3·4면

공씨는 딸을 통해 자술서를 배포한 직후인 이날 오후 6시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신의 아파트에서 복부 네 곳을 자해했다. 공씨는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씨는 자술서에서 “MBC(문화방송)측이 보도한 ‘삼성 관련 도청 테이프’는 (안기부에서) 도태당할 것에 대비, 밀반출해 보관해 오던 것”이라며 “(1998년) 함께 직권 면직됐던 A씨에게서 소개받은 재미교포 윌리엄 박을 통해 (MBC에) 유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공씨는 또 “퇴직 이후 A씨로부터 재미교포 박씨가 삼성측에 사업을 협조받을 일이 있으니 보관 중인 문건 가운데 삼성 관련 문건을 잠시 활용했으면 한다는 제안을 받고 박씨에게 (문건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공씨는 이어 “삼성측과 협상이 여의치 않다는 결과를 듣고 당황해 즉시 반납받았다”며 “이후 몇 개월 뒤 ‘보관 중인 문건을 반납해달라’는 국정원 후배의 요청에 따라 국정원 감찰실에 테이프 200여개와 문건을 반납했다”고 밝혔다.

공씨는 그러나 “또다시 국정원 후배가 ‘박씨가 삼성측을 협박하고 있어 삼성이 애를 먹고 있으니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느냐’고 하소연해 여비와 항공권을 주고 박씨를 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최근 A씨로부터 ‘박씨의 아들이 찾아와 푸대접에 항의했다. MBC 기자가 접촉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유출자가) 박씨로구나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재미교포인 윌리엄 박은 이날 오전 11시쯤 MBC기자 2명과 함께 일본 도쿄를 거쳐 미국 뉴욕으로 출국하려다 정보기관에 의해 출국이 정지돼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 국정원은 박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데려가 조사 중이다.

안기부 전직 간부 출신들의 모임인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국사모)’의 송영인 회장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 “천용택 전 원장이 공씨의 도청테이프 유출 사실을 알고도 처벌하지 않은 것은 (도청 테이프에) 자기네들(천 전 원장 등)과 관련된 사항이 있어 발표될 경우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림팀의 실체를 언론에 알린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 씨는 미국에서 취재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국정원이 저를 형사범이라고 판단하면 저를 인도해 줄 것을 미국측에 요청해야 마땅하며, 지금이라도 요청만 하면 당당히 조사에 응할 뜻이 있다”고 말했다.

이진동기자 (블로그)jaydlee.chosun.com

임민혁기자 (블로그)lmhcoo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