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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를 다룬 영화 '크로싱'을 보러 종로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는 결핵에 걸린 임신한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탈북 브로커의 술수로 뜻하지 않게 홀로 남한에 온 남자가 북에 남겨둔 가족을 데려오려는 과정을 그렸다. 탈북자 스토리가 흔히 그렇듯, 북한의 폭압정치와 인권탄압을 고발하는 내용일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애초에 큰 기대는 없던 터였다. 그러나 영화의 시선은 그보다는 삶의 극한에서 발견하는 휴머니즘에 맞춰져 있었다. 이념을 강요할 것이라던 '첫 예감'부터 깨져 버렸다.

"하나님도 잘사는 나라에만 사는 거 아닙네까?" 혼자 남한으로 온 주인공 영수가 가족에 대한 죄책감에 절규하는 장면. '하나님'은 '정의'나 '휴머니즘', '인권'이라는 말로도 들렸다. 경직됐던 극장 분위기가 어느새 조용한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어린 준이가 아버지에게 엄마의 죽음을 전하며 "잘못했습네다" "아부지랑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함다"라고 울부짖자, 한 중년 남성 관객은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아버지와의 재회를 목전에 두고 아이가 몽골의 사막에서 헤매는 장면에선 극장 안에 탄식이 이어졌다.

영화가 끝나자 에어컨 바람에 썰렁하던 극장 안 공기는 뜨거운 눈물로 데워져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관객들은 애써 서로 시선을 피해 영화관을 빠져 나서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눈물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이념, 그게 다 무슨 소용 있누…. 어린 것들이 못 먹고 저리 죽는데…."

지난 두 달 동안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먹을거리'를 위해 열병을 앓았다. 우리가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두고 갑론을박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 사이, 우리 가까운 곳에서는 '생존 그 자체'를 두고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