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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가게, 나눔으로 함께하는 곳] 군산 '번영세탁소' 고정곤씨

"소년·소녀가장 교복은 무료"… 기부로 또 나누는 세탁소
    전현석

    발행일 : 2009.11.12 / 사회 A1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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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군산시 문화동 군산상고 앞 사거리에 있는 번영세탁소. 문 옆에는 '소년 소녀 가장 중·고생 교복 무료 세탁!!'이라고 쓰인 A4 크기의 종이가 붙어 있었다. 세탁소 주인 고정곤(66)씨가 4년 전부터 붙여 놓은 것이다. 고씨는 "한 달에 10벌 조금 넘게 세탁해 주는 건데…자랑할 게 못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다림질하는 책상 앞에 '착한 가게' 현판도 붙였다. 매달 1만원씩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다.

    4일 세탁소에서 만난 고씨는 일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았다. 양복 한 벌 다리고 30분 정도 쉬고, 미싱을 돌리고 1시간 정도 쉬었다. 고씨는 "주택가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일감이 적다"며 "100만원도 못 버는 달이 1년에 절반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봉사와 기부는 꼭 해야 한다"며 "내 건강이 좋아진 게 다 이것 때문"이라고 했다.

    고씨는 원래 양복 만드는 사람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척이 운영하는 양복점에 들어갔다. 15년 동안 기술을 배운 뒤 군산시 선양동 상가에 양복점(26㎡·8평)을 열었다. 1971년 양복재단기능 1급 자격증을 땄다. 고씨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돼 종업원을 2명까지 뒀었다"고 했다.

    하지만 고씨는 1991년 양복점 문을 닫았다. 1980년대 기성복이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운영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고씨는 이때부터 군산항 어판장에서 생선 나르는 일을 했다. 이것만으로 고씨 부인과 아들·딸 등 네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없었다. 지난 2000년 빚을 내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5만원 하는 지금의 세탁소 자리를 얻었다. 오전 3시부터 5시간 동안 어판장에서 일하고, 이후 밤 10시까지 세탁소에서 일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고씨는 "그래도 돈은 안 모이고, 저축해 놓은 돈만 야금야금 까먹었다"고 했다.

    고씨는 2005년 병원에 입원했다.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고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속이 계속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고씨는 "당시 연탄가스를 마신 것처럼 아팠다"고 했다. 정밀 진단을 받았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고씨는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속병이 깊었나 봐요. 해도 해도 삶이 나아지질 않으니까. 되는 일도 하나 없고…."

    우울증 약을 먹고 다소 병세가 호전된 고씨는 퇴원 후 봉사를 결심했다. 고씨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데 '이러다가 아무 의미 없이 살다 가는 인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안 죽고 살았으니 세상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고씨는 "물질적으로는 못하지만, 가지고 있는 기술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 국가유공자와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정장 1벌에 1000원을 받고 세탁을 해주겠다는 안내문을 붙였지만 곧 떼어냈다. "국가유공자"라면서 고급차를 타고 오거나 비싼 옷을 맡기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후부터 소년 소녀 가장이나 보육원 아이들 옷을 무료로 세탁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토요일 밤 9시쯤 옷을 맡기고 일요일 밤 9시쯤 찾아갑니다. 손님이 잘 안 오는 시간이잖아요.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하고 몇 번씩 인사를 해요. 아이들 교복은 꼭 드라이클리닝을 해 줍니다. 그래야 오래 입거든요."

    고씨는 "봉사를 하고 난 다음부터 거짓말처럼 머리도 안 아프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봉사하고 기부한다'는 말, 저도 건성으로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내가 해보니 그 말을 이해하겠더군요. 아마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런가 봐요. 나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니까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고씨는 지난해부터 어판장 일을 그만뒀다. 고씨 부인이 작년부터 간병인 자격증을 따서 환자 돌보는 일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삶이 팍팍하다. 자식들 모두 직장을 못 구해 집에서 쉬고 있다. 고씨는 세탁소 난방비를 아끼려고 가스 보일러를 틀지 않고, 전기장판을 쓴다. 점심은 집에서 싸오는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1만원 기부하기도 좀 힘든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제가 노령 연금으로 한 달에 8만8000원을 받아요. 1만원을 줘도 7만8000원을 더 받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것도 다 투자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교복을 맡겼던 소년 소녀 가장들이 커서 성공하면 나한테 다시 옷을 맡길 거 아닙니까? 나 같은 노인들한테도 잘할 거고. 이게 진짜 상부상조지요."
    기고자 : 전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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