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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술에 관대한 한국 문화의 첨병(尖兵)에 '직장 술 문화'가 있다. 이력서에 주량(酒量)을 쓰도록 하고, 입사 전형에 '술자리 면접'이 있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금연을 강제하는 기업들은 점차 늘어나는 반면 절주 운동을 펼치는 회사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외국인들에겐 한없이 이상하기만 한 한국의 직장인 술 문화. 전문가들은 "직장인 술 문화가 바뀌어야 한국의 잘못된 술 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술 못하는데 입사할 수 있을까요?"

취업난에 시달리는 취업준비생들의 고민 목록에는 취업과 전혀 상관없을 듯한 '술'이 있다. 취재팀이 다음카페 '닥치고 취업'에 지난 1년 동안 올라온 글을 분석한 결과, "술을 못하는데 입사할 수 있을까요?" 등 술로 고민하는 취업준비생들의 글을 180여개 찾을 수 있었다.

구직자들의 술 고민은 입사 지원 때부터 시작된다. 상당수의 기업이 이력서를 작성할 때 음주 여부와 주량을 쓰도록 하고있기 때문이다. 해외 각지에 지사를 두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입사지원서에 주량을 쓰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이라고 했다. 지난해 한 제약회사에 지원했던 정현민(가명·28)씨는 "모태 신앙으로 지금껏 한 번도 술을 마신 적이 없지만,술 못한다고 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봐 '1병'이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입사지원서가 끝이 아니다.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술을 마시며 진행되는 음주 면접 전형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2월 한 시중은행에 입사한 이지현(가명·26)씨는 1박2일로 진행된 합숙 면접에서 술을 마셨다. '술자리 면접' 때문이다. 11명이 한 조가 돼 면접관 2명과 함께 오후 9시부터 술자리가 시작됐다. "이건(술자리) 평가에 안 들어가니까 걱정 말고 편하게 마셔요"라고 했지만 면접관들은 술자리 중간중간에 수첩과 휴대폰에 메모를 했다.

입사지원서, 음주면접뿐 아니라 통상적인 면접에서도 주량을 묻는 질문은 '단골 메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 상반기(1~3월) 기업 공채에서 나온 면접 질문 346건을 분석한 결과 '주량 정도'를 묻는 질문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자기소개' '자신의 강점' 등에 이어 4번째로 많이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社內) 금연 운동은 있어도, 절주 운동은 없다

술과 함께 몸에 해로운 양대 기호품(嗜好品)으로 불리는 것이 담배지만, 담배와 술을 대하는 기업들의 자세는 너무나 다르다. 최근 사내 금연운동을 하는 기업은 크게 늘고 있다. 일부 기업은 금연서약서를 쓰고 소변과 혈액검사를 통해 흡연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심지어 흡연하는 직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회사 출입구 통과 횟수까지 체크하는 기업도 있다.

술은 다르다. 국내 30대 기업 중 술을 줄이거나 끊자는 절주·금주 운동을 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직장생활에는 술이 늘 함께 한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알려진 한 건설회사 12년차 최지훈(가명·42) 과장은 "술이 없는 직장 생활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게 없다"고 했다. 입사한 직후에는 '신고식'이라는 이유로 술을 마시고, 팀 성과가 좋으면 기쁘다는 이유로, 나쁘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이유로 술자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최 과장은 "입사 후 첫 경험이 선배들과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겨 선배 집에서 잤던 것"이라고 했다.

금연정책을 강하게 진행하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담배는 사회 분위기도 있고 직원들 몸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업무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강하게 제지하고 있다"면서 "술은 거래처와의 관계, 직장 내 팀워크 등을 증진시키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제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여전히 직장에서 술은 '업무상', '직원들 간 친목도모' 등의 이유로 권(勸)해지는 대상이지, 제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가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장기훈 선임연구원은 "폭탄주를 돌리고 폭음이 강요되는 직장 술 문화는 심각한 문제"라며 "우리 사회의 술 문화는 대부분 직장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술 문화가 개선되지 않고선 우리 사회의 술 문화가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날이 새도 '오늘 밤'인 나라"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술 문화가 미국에서는 '기삿거리'가 된다. 지난해 5월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서울에서의 밤샘 폭음'이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한국 직장인들의 술 문화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WP는 "한국에서는 술자리가 3차까지 이어지는 게 보통"이라며 "처음에는 저녁식사로 시작하지만 곧 밤새 술집 순례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한국인들은 직장 상사가 지치거나 만취해 술자리를 끝내기 전에는 아무도 먼저 집에 갈 수 없다" "술집을 옮기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중요한 계약이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등의 내용도 담았다. 술자리가 결국 장시간, 폭음으로 이어지는 문화에 대해서는 "날이 새도 '오늘 밤'이라고 표현한다"고 보도했다.

[특별취재팀]
김성모 기자
석남준 기자
권승준 기자
박상기 기자
남정미 기자
이옥진 기자
이준우 기자

[그래픽] 혈중 알코올 농도와 신체 상태 / 술이 괴로운 직장인들의 '말말말' 기고자 : 특별취재팀 김성모 석남준 권승준 박상기 남정미 이옥진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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