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2010년 8월 대전 서구 일대에서 3년간 총 23차례에 걸쳐 주택, 승용차 등에 불을 지른 강모(37)씨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강씨는 대형 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술만 마시면 불을 지르는 방화범(放火犯)이었다. 주로 심야 시간대를 골라 원룸주택이나 승용차 등에 폐자재와 라이터를 이용해 불을 붙였는데 그의 방화로 인한 재산 피해가 1억3000만원에 달했다. 강씨는 전과도 없었고, 정신질환 치료전력도 없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부부관계가 원만치 않아서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범행 때마다 만취해 자세한 경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술을 마시고 풀 곳이 없어서 밤 시간을 이용해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폭(酒暴)들이 살인·폭행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비율만 놓고 보면 술을 먹고 불을 지르는 사람이 더 많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부터 5년간 일어난 방화(7880건) 중 44.9% (3535건)가 술 취한 사람이 저지른 것이었다. 가장 최근인 2010년에는 1286건 중 596건(46.3%)이 주폭이 저지른 것이었다. 살인(37.9%)·강간(38.5%)·폭력(35.5%) 등 다른 강력범죄보다 높은 비율이다. 방화(放火)는 형법에서도 강간·강도와 함께 징역 3년 이상에 처해지는 중범죄(重犯罪)다.

강씨 같은 주취(酒醉) 방화범들의 범행을 뜯어보면 평소 생활이나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은 상태에서 술이 범행의 촉매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작년 12월 경기도 오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술에 취한 문모(59)씨도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술을 먹은 상태에서 화를 참지 못해 이웃집에 불을 질렀다. 당시 문씨는 소주 1병 반과 맥주 2병가량을 마시고 집에 가던 중 복도에서 고등학생 2명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순간 문씨는 이웃집 현관문 앞에 종이 상자 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현관문과 아파트 복도 벽을 태웠다.

법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질렀고 조기 진화로 피해가 가벼웠던 점 등을 감안한다"며 문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난달 14일 오후 10시쯤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에 사는 공무원 A(54)씨는 술에 만취해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평소 아내와 다툼이 잦았던 A씨는 이날도 아내가 오후에 집을 나간 후 전화도 받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혼자서 소주 2병을 마신 뒤 A씨는 다용도실에 있는 세탁기 안에 옷을 쌓아둔 뒤 가지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은 순식간에 세탁기로 옮겨붙었고, 신고를 받은 소방대원들이 10분 만에 진화했지만 100여만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방화는 작은 불꽃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범죄"라며 "술을 먹지 않은 상태에선 이성적으로 방화의 위험성을 판단할 수 있지만, 술을 먹은 상태에서는 이러한 판단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표] 최근 5년간 연도별 방화 중 주취자(酒醉者)가 저지른 비율

[특별취재팀]
김성모 기자
권승준 기자
석남준 기자
김형원 기자
박상기 기자
이옥진 기자
이준우 기자
이지은 기자 기고자 : 특별취재팀 김성모 권승준 석남준 김형원 박상기 이옥진 이준우 이지은
본문자수 : 1774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