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운전하기 싫어 죽겠는데 잘됐네. 형사님, 벌금은 할부로 내도 되죠?"

12일 새벽 1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사거리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단속에 걸려 면허 취소 처분을 받은 이모(31)씨는 경찰서에서도 당당했다. 이씨는 2005년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고 벌금 100만원을 내야 했지만 지금까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날은 아예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술을 마시고 교통사고까지 냈지만 그의 말투나 행동에서 죄책감은 엿볼 수 없었다. 이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29％. 면허 취소 기준(0.1％)을 훌쩍 넘었다. 11일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일가족 4명을 사망케 한 김모(38)씨의 알코올 농도(0.101％)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씨는 한 시간 전 단속을 피해 도주하다가 사고를 냈다. 단속 중인 경찰을 발견하자 차를 급하게 돌려 달아나다가 커브길에서 가로수를 들이받은 것이다. 자동차 앞범퍼는 나가떨어지고 왼쪽 바퀴 두 개 모두 펑크가 났다. 경찰이 이씨에게 공공기물(가로수) 파손 혐의까지 적용하자 이씨 차에 동승했던 여성은 "경찰의 음주 단속으로 사고 난 건데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본지 취재팀은 11일 밤 11시부터 12일 새벽 2시까지 강남구 청담사거리와 마포구 합정로터리 부근, 남산 1호 터널 앞에서 경찰의 음주단속 현장을 취재했다. 인천공항고속도로의 참변 이후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서울 시내 도로에는 이씨 같은 주폭(酒暴)이 차를 몰고 다니고 있었다. 취재팀이 현장에서 만난 음주운전자 대부분은 이씨처럼 당당했다. 경찰에게 "더럽게 걸렸다"고 소리를 지르고, "(측정)기계가 이상하다"며 따졌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훈방 처분되는 0.05％ 이하로 나오면 웃으며 동승인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음주운전은 면허 정지 처분(혈중 알코올 농도 0.05∼0.1％)만 받아도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는 범죄다. 작년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상자는 5만1868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상자의 15％다. 10년간 음주단속 업무를 해온 일선 경찰서의 한 경위는 "술 먹고 사람 때리는 것이 주폭이라면, 술 먹고 사람 잡는 음주운전자들은 '주폭 중의 주폭'"이라며 "음주운전하다가 걸린 사람치고 반성하는 사람은 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은 어떻게든 처벌받지 않을 궁리부터 했다. 12일 0시 40분 합정로터리에서 걸린 김모(46)씨는 처음에는 경찰이 갖다댄 음주감지기를 순순히 불었지만 '삐'소리가 나자마자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도망가려 한 것이다. 경찰 4명이 자동차 앞으로 달려들었지만 김씨는 2m가량 더 전진하다 겨우 멈췄다. 앞을 막아선 경찰들이 깔릴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차에서 내린 김씨는 "그냥 가도 된다는 것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만취 상태인 0.137％였다. 서울 중부서 교통조사계 이모 경위는 "지난달엔 음주단속에 걸린 남자가 다짜고짜 '단속 경찰에게 맞았다'며 인권위에 제소까지 했다"고 말했다.

11일 11시 50분쯤 청담사거리에서 단속에 걸린 구모(57)씨는 걸음걸이까지 비틀거렸지만 측정 결과 알코올 농도는 0.036％로 나왔다. 동승한 남성은 "에이, 얼마 안 나왔네"라고 말했고, 구씨는 "저번에 0.04％까지 나왔었는데 이 정도 가지고 뭘"이라고 답했다. 경찰이 "선생님, 그거 자랑 아니에요"라고 말했지만 두 남성은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래픽] 연도별 음주운전 적발 건수와 상습 음주운전자 비율 / 음주운전 때문에 발생한 사상자 비율 / 음주운전자들 황당 사례 말말말 기고자 : 박상기 윤동빈 이준우
본문자수 : 184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