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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17일 국립 서울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 전(前) 대통령 묘역과 일반 사병 묘역을 참배했다. 문 후보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들르지 않았다. 문 후보의 현충원 참배엔 문 후보 비서실장과 대변인만 수행했을 뿐 당 지도부는 따라가지 않았다. 이런 단출한 참배에 대해 문 후보 측은 "문 후보는 새 시대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가려는 대선 후보로서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참배 대신 정권 교체의 길에 자신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참배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는 한 달 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자 "국민 통합을 위해 바람직하다. 당부드린다면 진정성 있는 방문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교수도 "이런 것이 국민이 원하는 정치"라며 박 후보와 문 후보 두 사람 모두를 높이 평가했다.

문 후보가 박 후보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참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지 않은 데는 나름의 판단이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권은 그동안 상대 진영을 내 진영과 의견이 다른 경쟁자가 아니라 적(敵)으로 간주하는 정치를 해왔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자기 진영 출신은 높이 떠받들면서 상대편 공(功)은 인정하지 않으려 해왔다. 이런 정치 문화는 이승만·박정희 시대 장기간 권위주의 통치가 이어지면서 야당이 이에 맞서 투쟁해왔던 지난 역사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현재의 여야 간에는 상대 측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와 화해를 시도할 경우 그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고 정권을 주고받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마당에 현 야당도 언제까지 지난 시절의 정치 틀에만 갇혀 있을 순 없다. 문 후보는 대학 시절 유신 반대 시위를 하다 제적당한 박정희 정권의 피해자인 동시에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권력의 정점(頂點)에서 국정을 다뤄본 인물이다. "새 시대 새 정치의 맏형" 역할을 내세우며 국정의 최고 지도자가 되려 하는 그는 그동안 "적대적 경쟁 문화를 상생과 통합의 문화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외쳐왔다. 새 정치 문화를 심고 뿌리내리는 일엔 박 후보와 새누리당에 주어진 몫이 있고 문 후보와 민주당이 해야 할 역할도 있다. 문 후보 같은 정치인이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별다른 정치적 고려 없이 찾는 날 한국 정치의 진정한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