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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먹거리 Why? 파일] "마블링 쇠고기가 더 맛있다? 쇠고기 등급제가 만들어낸 환상"

    황교익

    발행일 : 2013.08.31 / 통판 B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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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서 살살 녹아요." "고소한 맛이 강해요." 마블링 쇠고기와 기름 하나 없는 쇠고기를 비교 시식하는 자리였다. 시식자들은 마블링 쇠고기가 더 맛있다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고기 맛에 대해 말해달라 하였는데, 그들은 기름 맛에 집중하였다. "기름이 아니라 고기 맛을 보세요" 하고 재차 삼차 주문을 하자 대답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게 육향이 진하네요." "아, 이건 기름 맛이었네요." 마블링에 중독된 입맛이 교정되기 시작하였다. 내가 요즘 하는 미각 교육의 한 장면이다.

    쇠고기 등급제는 기름이 잔뜩 끼일수록 맛있는 쇠고기라고 판정한다. 상위 등급의 마블링 쇠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곡물 사육이 필수이다. 쇠고기 등급제는 사료용 곡물 수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 과다한 곡물을 먹어야 하는 초식동물의 고통을 기반으로 한 제도라 할 수 있다. 근래에 쇠고기 등급제의 이 같은 문제가 몇몇 언론을 통해 지적되면서 소비자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자신의 입에는 마블링 쇠고기가 분명히 맛있으며, 이는 인간의 절대적인 미각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인간은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 혀는 단맛·짠맛·신맛·쓴맛·감칠맛을 느낀다. 그런데 이 오미는 인간이 느끼는 맛에서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인간이 결정적으로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은 코이다. 후각에 의해 맛에 대한 분별이 만들어진다. 코를 막고 양파와 사과를 번갈아 씹으면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실험은 익히 들었을 것이다. 맛은 곧 향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후각은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 수만 종류의 향 분자를 낱낱이 구분하지 못한다. 민감도에서도 다른 동물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 개는 300배, 돼지는 500배나 뛰어난 후각 민감도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인간의 후각은 금방 피로를 느낀다. 아무리 좋은 고기 굽는 냄새라도 5분 정도 지나면 악취이다. 인간은 맛과 관련하여 무척 허술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맛에 대한 감각이 이처럼 허술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미각 교육의 첫걸음이다. 감각이 이처럼 허술하니 누군가가 내 입맛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이 그다음이고, 스스로 바른 미각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도우는 일이 본격 미각 교육이다.

    대체로 마블링 쇠고기가 맛있는 고기라는 미각 기준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쇠고기 등급제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일 뿐이다. 세계인 중에 유독 한국인과 일본인만이 마블링 쇠고기를 맛있다고 여기는 것은 이 두 나라만이 쇠고기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국가가 그 어떤 이유로 국민에게 마블링 쇠고기를 먹이려고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일종의 입맛 조작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미각 교육이 또 다른 입맛 조작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인데, '마블링 쇠고기가 맛없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고기 맛과 기름 맛을 분별하여 맛을 보라'고 할 뿐이다.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마블링 쇠고기와 비슷한 일이 천일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천일염은 저나트륨 소금이다, 미네랄이 풍부하여 건강에 좋다, 청정 갯벌에서 생산된다 하고 국가에서 홍보하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천일염이 저나트륨 소금일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생산자단체가 이 지면에 반론을 게재하였다. 그런데 내가 칼럼에서 말한 내용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천일염 홍보일 뿐이었다. 천일염의 미네랄과 갯벌에 관한 칼럼이 준비되어 있었으나 그 같은 반론이 또 이어질 것으로 염려되어 이 지면에 게재하지 않기로 하였다. 예고되었던 칼럼은 내 블로그 '악식가의 미식일기'에서 읽기 쉽게 풀었다. 그에 대한 반론도 내 블로그에서 받겠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기고자 : 황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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