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어제 새벽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91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싱가포르를 영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분리시킨 건국의 아버지요, 보잘것없던 항구도시를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현대국가로 변모시킨 개발의 지도자가 찬란한 유산과 만만찮은 과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제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를 제외하고는 20세기 아시아에서 자신의 나라를 호령했던 거인(巨人) 지도자, 철인(鐵人) 통치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리콴유가 이룬 성공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것처럼 싱가포르를 풍요로운 경제 선진국과 부정부패 없는 일류국가로 이끈 실용주의적 경제정책과 강력한 리더십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 그의 경제적 치적에서 특히 두드러진 부분은 중산층은 물론이고 저소득층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의 의식주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해결해 내었다는 점이다. 모든 가구가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도록 탁월한 주택 정책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생필품의 수입 장벽을 낮춰 먹고 입는 일상의 걱정으로부터 국민을 해방시켰던 것이다. 나아가 전 세계에서 불과 몇 나라만이 성공한 공교육 체계를 확립하고, 재정 파탄의 위험이나 우려 없이 보편적 의료 혜택을 국민에게 제공했다. 리콴유가 부패 척결을 위해서는 어떠한 정치적 계산이나 타협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국부(國父) 리콴유를 떠나보내야 하는 그의 아들 리셴룽 총리를 비롯한 현 지도부 앞에 던져진 만만찮은 과제들은 싱가포르의 성공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민주화와 국민통합이 가장 심각하고 당면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싱가포르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한,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1959년 집권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정부를 내주지 않았던 집권 인민행동당은 2011년 선거에서 사상 최대인 40%의 반대표를 받았지만 리콴유의 권위주의 통치를 계승한 현 지도부는 민주화에 대한 로드맵은 물론 구상조차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리콴유만큼 카리스마와 정통성을 누리지 못한 현 집권세력이 선진국으로 향하는 모든 국가가 겪어야 했던 민주화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렇게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둔 싱가포르이지만 진정한 국민통합을 얻어내는 데는 별 성과를 보지 못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절반이 더 좋은 기회가 오면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대답해 리콴유가 살아생전 그렇게 열망했던 중국인·말레이인·인도인이 아닌 '싱가포르인(Singaporean)'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만들기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건국 이전부터 존재했던 엘리트와 대중, 상류층과 하류층, 관료와 민간인, 토착인과 이민자 등 다양한 계층과 집단들 사이의 간극과 골이 새로운 국가 건설과 성공적인 경제 발전 과정에서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넓어지고 깊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인구 증가 정책으로 중국과 인도 등 인접 아시아 국가에서 밀려드는 이민과 외국인 취업자로 표출되고 있는 위화감과 갈등은 싱가포르인들의 정체성과 충성심을 더욱 약화시킬지도 모른다. 싱가포르인들이 리콴유 총리를 "존경했으나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 자꾸만 귓전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