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지난 2일 사진 한 장에 세계는 슬픔에 빠졌다. 이날 아일란 쿠르디란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기가 피난처를 찾으러 지중해를 건너려다 터키 해변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장면이 터키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바닷모래에 얼굴을 반쯤 파묻고 엎드려 있는 쿠르디의 모습은 엄마가 깔아준 이부자리에 누워 새근거리며 자는 듯했다. 근처에서 그의 다섯 살 형과 엄마의 시신이 이어 발견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들을 데리고 지중해 너머 유럽으로 가려고 했던 쿠르디의 아버지는 간신히 구조됐다. 하지만 그도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브로커의 꾐에 넘어가 거액을 줘가며 안전장치 하나 없는 낡은 배에 처자식을 태워 지중해를 건너려 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꿈이 사라졌다"면서 "시리아(아직 전쟁 중이다)로 돌아가 무덤 곁에 살겠다"고 울며 말했다.

쿠르디 가족의 비극은 세계를 부끄럽게 했다. '난민을 받으면 사회가 혼란해진다' '경제적 부담이 크다'면서 세계는 지난 4년간 시리아 난민 문제를 외면했다. 난민을 낳은 시리아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서방과 아랍 산유국은 큰소리 내며 적잖은 구호금을 내놨지만 정작 난민을 자국 영토 안으로 들이기는 꺼렸다. 국경을 열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싼 나라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둘째치고 물도 부족한 아랍 최빈국 요르단이었다. 이런 가운데 내전 중에 태어나 전쟁 없는 세상이 뭔지도 몰랐던 쿠르디가 죽은 것이다. 독일 등 유럽 각국이 부랴부랴 "난민을 적극 돕겠다"면서 나섰다. 이는 한편으로 지난 1년간 3500여 명이 쿠르디처럼 지중해에서 죽을 때는 조용히 있다가 난민 이슈가 커지자 국가 이미지에 손상을 입지 않으려고 나서는 것처럼 비쳤다.

인권을 누구보다 강조해온 서방에선 이번 사건과 관련해 '솔 서칭(soul-searching·자기반성)'의 물결이 일고 있다. 서방은 1·2차 세계대전으로 피난 생활을 직접 겪고 도움을 구걸했던 과거가 있다. 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줄 여력이 있는데도 그러지 않았던 사실에 서방 스스로 실망감이 컸던 것이다.

나치 정권의 학살 가운데 각국의 의인(義人) 덕으로 목숨을 구하고 나라까지 세운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우리를 구해줬던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돕지 않았느냐"면서 "이스라엘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난민으로 위장한 테러 분자가 이스라엘에 잠입할 수 있다' '영토가 너무 작아 난민을 받기가 어렵다'는 이유를 대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길거리에 누군가 다쳐 쓰러져 있으면 다가가 사정을 살피고 돕는 것이 사람이라면 갖는 보통의 마음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라는 오늘날 우리는 꺼져가는 생명의 불빛을 앞에 두고 숫자를 세고 국제법 문구를 따지고 있다. 쿠르디의 사진 한 장은 보통의 마음을 상실한 이 시대를 향해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기고자 : 노석조
본문자수 : 147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