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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6명은 "가정이 우선이다"(유책주의), 다른 대법관 6명은 "가정이 이미 파탄된 현실을 중시해야 한다"(파탄주의)는 의견을 낸 아슬아슬한 순간, 캐스팅 보트를 쥔 양승태 대법원장이 유책주의에 손을 들면서 50년간 지속돼온 '이혼 재판 유책주의 원칙'이 당분간 유지되게 됐다.

그러나 대법관 절반에 가까운 6명이 파탄주의에 표를 던짐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4번의 심판에서 간통죄에 대해 합헌(合憲) 결정을 내렸던 헌법재판소가 올해 2월엔 위헌(違憲) 결정을 내린 것처럼, 유책주의 판결도 훗날 대법관 구성이 변화하면 파탄주의 쪽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수 의견을 낸 7명의 대법관도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는 '예외 사유' 한 가지를 28년 만에 추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날 대법원 판결은 파탄주의를 도입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지만,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 쪽으로 반보쯤 다가간 셈이다.

◇"약자 보호 조항 없어 시기상조" 예외 사유만 확대

대법원은 1965년 "축첩(蓄妾)한 남편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결한 이래 50년간 유책주의 기조를 유지해 왔다. 바람피운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면 생계·자녀양육 수단이 없는 여성이 무일푼으로 쫓겨나는 이른바 '축출이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산분할·면접교섭·위자료 및 양육비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축출이혼의 위험성이 점점 낮아졌고, 일부에선 "더 이상 축출이혼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므로 우리나라도 파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파탄주의를 채택한 나라에는 상대방과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이혼 후에도 전 배우자를 부양하라고 정한 법 조항이 없다"며 "법률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자료나 재산분할 제도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또 "헌재가 간통죄를 위헌이라고 결정한 상황에서 대책 없이 파탄주의만 도입하면 중혼(重婚)을 인정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대법원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는 예외 사유를 기존보다 확대했다. 대법원은 이날 "유책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배우자와 자녀를 잘 보호해 왔고, 세월이 많이 지나 책임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이라면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며 예외 사유를 추가했다. 법조계에선 "별거 기간이나 부양 기간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하급심에서 상당한 혼란이 뒤따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파탄주의' 의견 6명… 여성 대법관도 갈려

이번 사건에서는 2명의 여성 대법관 중 박보영 대법관은 '유책주의' 편에, 김소영 대법관은 '파탄주의' 편에 서 눈길을 끌었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실질적으로 이혼 상태에 있는 관계에 대해 이혼을 인정함으로써 법적 관계를 확인·정리해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파탄주의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혼인의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는 이혼을 결정짓는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한다"며 "잘못한 부분이나 부양 방식 등은 위자료·재산분할 액수를 정할 때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회·경제적 환경이 변화했고, (파탄주의 도입을 위한) 법적·제도적 보완이 상당히 이뤄져 있다"며 "혼인 생활을 계속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어느 한 쪽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면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책주의·파탄주의

유책주의는 불륜을 저지르거나 집을 나가는 등 혼인 의무에 위반되는 행동을 한 유책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게 한 제도다. 반면 파탄주의는 부부 당사자의 책임 유무보다는 혼인 관계를 계속할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혼을 허용하는 제도로 유책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그래픽] 유책주의냐·파탄주의냐 7대6으로 갈린 대법관들

기고자 : 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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