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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선택] 에베레스트

무덤과 정상 사이에서 산과 하는 경쟁… 이겨야만 살아남는다
    박돈규

    발행일 : 2015.09.24 / 주말섹션 D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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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렇게 山이 되었다'고 소설가 박범신은 썼다.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를 등정하다 실종된 2011년 가을이었다. "고산 등반가들에게는 한 발 한 발이 모두 무덤과 정상 사이에 걸쳐 있으므로 그곳에서 그들은 지각이 더 맑아지고 마침내 전혀 새로운 생의 비전을 연다. 일상에서 빠져나오는 게 거의 불가능한 현대인에게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전이다."

    24일 개봉한 '에베레스트'(감독 발타자르 코루마쿠르)는 히말라야 14좌 중에서도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848m)로 관객을 데려간다. 이 설산(雪山)은 더 이상 최고의 산악인만 허락하지 않는다. 체력과 열정, 돈만 있으면 듬직한 가이드와 함께 오를 수 있게 됐으니까. 그래도 한 발 한 발이 무덤과 정상 사이에 걸쳐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에베레스트'는 상업 등반 가이드 시대가 열린 1996년에 일어났던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그해 봄 에베레스트 등반로는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번호표 뽑고 기다렸다 올라야 할 판이다. 상업 등반 가이드 롭(제이슨 클락)은 6만5000달러를 낸 텍사스 토박이 벡(조슈 브롤린), 초등학생들이 성금을 보태준 우체부 더그(존 호키스) 등을 데리고 제1캠프(5944m)에 도착해 적응 훈련을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정상은 엽서 사진처럼 아름답고 너그럽다. 롭은 출산을 앞둔 아내 잰(키이라 나이틀리)과 통화를 하며 딸아이 이름을 지어놓는다.

    안전을 제1원칙으로 삼는 롭의 원정대와 대원 자유분방한 피셔(제이크 질렌할)의 원정대는 팀을 합치기로 하고 단체 사진을 찍는다. 동행한 잡지사 기자가 둘러보며 묻는다. 힘들고 위험하며 가정불화 생기고 돈도 엄청 깨지는 이 짓을 왜 하냐고. 더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 같은 보통 사람도 불가능한 꿈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등반은 빙벽에서 시작해 빙벽에서 끝난다. 이 영화는 에베레스트 간접 체험과 같다. 관객은 이들과 더불어 하늘에 쌀을 뿌리며 정상 정복과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 빙괴(氷塊)를 맞아 미끄러지고 아득한 크레바스를 사다리로 건너고 고산병 증상을 지켜본다. 우회로는 없고 방심은 금물이다. 눈보라를 뚫고 제4캠프(7925m)까지 동행하면서 등반대는 사지(死地)에 간 사람들처럼 우정을 쌓아간다. 누군가 말한다. "정상 정복은 모든 사람과 이 산의 경쟁이야. 결정권은 늘 산에 있지."

    마침내 5월 10일 새벽 0시 30분. 폭풍 예보가 있긴 하지만 산은 잠잠해졌다. 절호의 기회다. '에베레스트'의 참모습은 이 대목부터다. 극한의 고통이 스크린 밖까지 밀려온다. 믿을 것이라곤 로프와 산소통, 동료뿐이다. 짐작대로 난코스를 만나고 문제가 터지고 낙오자가 생긴다. 등반에 깊이 몰입한 관객일수록 몸담은 만큼 더 어질어질해진다. '널빤지 밑이 저승'이라고 뱃사람들은 말한다. 에베레스트에서는 발밑이 저승이다. 그들이 목숨 걸고 그토록 밟고 싶어했던 정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조난당한 이들은 눈에 묻히면서 산이 되어간다. 체력이 바닥나고 폭풍 속에 고립된 롭과 아내 잰이 통화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롭과 베이스캠프를 연결하는 무전기, 베이스캠프와 잰을 이어주는 위성전화를 서로 맞댄 채 나누는 대화다. 둘의 사랑과 위로, 격려는 이 설산만큼 거대하게 반짝인다. '중요한 건 고도가 아니라 태도(Your attitude determines your altitude)'라는 말이 귓바퀴에 맴돈다.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 '히말라야'도 기대된다. 엄홍길 대장(황정민)이 에베레스트에서 생을 마감한 후배 대원의 시신을 거두러 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지난 7월 만난 엄 대장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괴롭고 참담하지만 그들과 함께 오른다는 마음으로 산에 간다"며 "극한 상황이 닥치면 산에서 잃어버린 10명의 이름을 주문처럼 왼다"고 말했다. 그러면 용기와 힘을 얻어 어느 순간 위기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우리 중 99.9%는 평생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못한다. 워킹타이틀이 제작한 이 영화는 무대가 단조롭고 예측 가능하다는 게 흠이지만 간접 등반기로는 훌륭하다. IMAX로 보면 광대한 자연이 더 실감 나게 육박해온다. 121분, 12세 관람가.

    기고자 : 박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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