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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을 주도한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는 요즘으로 치면 기독교 세계 최고의 '파워 블로거'였다. 가톨릭 사제이기도 했던 그는 1517년 10월 31일 95개 항목에 걸쳐 조목조목 면벌부(免罰符·번역자는 '면죄부' 대신 '면벌부'로 쓰고 있다. 죄를 면하는 게 아니라 벌을 면한다고 써야 맞는다는 주장이다)를 논박한 글 '면벌부의 능력과 효력에 대한 논쟁'을 비텐베르크성(城) 교회의 출입문에 붙였다. 예상치 못했던 일은 그다음 벌어졌다. 글은 누군가에 의해 소책자와 전단지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2주가 안 되어 라이프치히·뉘른베르크 등 독일 전역으로 퍼졌다. 다시 2주 뒤에는 거의 전 유럽에서 그의 글을 구해 읽을 수 있었다. 이 글의 유포 과정에선 오늘날의 '공유하기'나 '퍼가기'와 동일한 시스템이 작동했다. 어떤 메시지를 퍼뜨릴지는 필자가 아니라 독자들이 공유와 추천, 복제를 통해 결정했다. 지금의 스마트폰과 같은 역할을 금속활자와 인쇄기가 했던 셈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공학 및 컴퓨터과학을 전공했고, '이코노미스트' 부편집장 겸 이코노미스트닷컴 편집장인 저자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현대의 소셜 미디어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기술적 환경만 바뀌었을 뿐 인류가 정보를 공유하고 소비하고 조작하는 방법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지배 계층이 근거없는 소문이나 루머가 퍼지는 것에 불안감을 보이는 것마저도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면 으레 반복되는 패턴이라고 주장한다.
인쇄술의 발명이 종교혁명을 부른 것처럼 새로운 미디어는 사회적 격변과 함께 찾아오곤 한다. 2010년 12월 17일 26세의 튀니지 과일 행상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에게 물건과 저울을 압수당한 뒤 항의하기 위해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했을 때 국영 미디어는 이를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분신 모습과 시위 장면을 찍은 휴대폰 사진이 페이스북, 유튜브, 블로그 등의 소셜 사이트에 퍼지기 시작했다. '자스민혁명'은 소셜 미디어의 등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의 시원(始原)을 찾아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정치인들은 나무틀에 끼운 납판에 철필로 메모를 써서 돌려봤다. 널빤지에 밀랍을 바른 납판은 손쉽게 쓰고 지우는 것이 가능했다. 노예들은 주인에게 받은 납판을 들고 시내를 뛰어다녔고, 다시 답장을 받아 주인에게 가져왔다. 그들이 들고 뛴 것은 모바일 메신저였고, 노예들은 '광대역 통신망'이었던 셈. 공교롭게도 이 납판은 태블릿PC와 외양까지 유사하다! 로마는 정보를 통해 제국을 유지했다. 원로원 회의록인 '악타 디우르나'[가 발표되면 필경사들이 베끼고, 주석까지 곁들여 퍼뜨렸다. 제국 전역에 독자가 있었다. 로마의 소식이 서쪽 브리타니아에 도달하는 데는 5주, 동쪽 시리아에 도달하는 데는 7주가 걸렸다. 지식인들은 자기 글을 널리 퍼뜨려 영향력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필경사가 많을수록 하루에 발신(發信)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많았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류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17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도 새로운 뉴스와 메시지 풍문이 쏟아져 들어오는‘소셜 플랫폼’이었다. 우리가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을 수시로 확인하듯 손님들은 하루에 한두 번 커피하우스에 들러새로운 뉴스가 없는지 확인했다. 동시에 이곳은 신사, 직공, 지주, 불한당이 어울리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장소였다.
인류는 왜 이다지도 정보에 목말라할까. 저자는 원숭이가 털 고르기를 통해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듯 인간은 수다를 떨고 풍문을 주고받으며 집단 내부의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고 본다. 파피루스에서 페이스북까지 미디어란 결국 '사회적 털 고르기' 수단인 셈. 그는 소셜 미디어가 '시간 낭비'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과거에도 커피하우스 때문에 사람들이 딴생각을 하고, 일을 해야 할 때 친구들과 노닥거리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웃어넘긴다. 매일 접하는 뉴스와 정보에 대한 재기(才氣) 넘치는 해석이 돋보인다.
기고자 : 신동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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