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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치수(1940~2014) 1주기를 맞아 '김치수 문학전집'(전 10권·문학과 지성사) 1차분 2권이 나왔다. 유고(遺稿) 비평집 '화해와 사랑'과 생전에 대표작으로 꼽힌 비평집 '문학사회학을 위하여'다. 불문학자였던 김치수는 지난 4일 92세로 타계한 프랑스 사상가 르네 지라르의 '삼각형의 욕망' 이론을 1970년대 말부터 국내 인문학계에 퍼뜨리기도 했다. 그가 2001년 불문학자 송의경과 함께 완역한 르네 지라르의 문학 이론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요즘 대입 논술 학원에서도 필독서로 꼽힌다.

르네 지라르의 '삼각형의 욕망'이란 '서구 소설에서 주인공의 욕망이 중개자(仲介者)의 욕망을 모방하는 간접화를 거쳐 욕망의 대상에 도달하는 삼각형의 구조를 띠고 있다'는 이론이다. 주인공·욕망의 대상·중개자가 삼각형의 세 꼭짓점인 셈이다. 돈키호테가 기사도(騎士道)를 실현하려는 욕망을 품고 방랑에 나선 것은 기사도 소설의 주인공을 모방한 것이다.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의 쥘리앵은 나폴레옹을 모델 삼아 신분 상승의 꿈을 키웠다. 이처럼 소설 주인공의 욕망이 실존 인물이든 허구의 인물이든 중개자를 거치는 과정이 다른 소설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현실에서도 개인의 욕망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흉내낸 경우가 많다. 소비자가 CF 주인공을 모방해 상품을 구매하도록 암시하는 광고가 욕망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경쟁 관계에 있는 타인이 원하니까 엉겁결에 그 욕망을 따라하는 질투심과 속물 근성도 욕망의 삼각형을 형성한다. 그런데도 개인은 자신이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욕망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낭만적 거짓'에 빠진다. 위대한 소설은 그런 '낭만적 거짓'이 가득한 사회를 일깨워주는 '소설적 진실'을 제시해왔다.

김치수는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오늘날 우리의 욕망 체계를 소설 주인공의 욕망 체계에서 발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특성을 제시한 명저"라고 평가했다. 김치수는 소설 비평을 통한 사회 비평을 지향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이 단순히 시간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가 1970~80년대에 쓴 글을 모은 비평집 '문학사회학을 위하여'는 "사회적 현실은 문학 작품의 표층 구조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심층 구조 속에 숨어 있다"고 강조했다. 김치수는 겉보기엔 사회 고발과 무관한 듯한 대중소설이나 관념소설에서도 숨은 현실의 정체를 밝혔다.

이번에 나온 유고(遺稿) 비평집엔 지난 2008년 타계한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재조명한 글이 실려 있다. 김치수는 "입장이 다른 각자가 폭력이 배제된 자신의 말을 회복하고 그 회복된 말들이 조화를 이룰 때 그 섬은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이 된다"라며 "그것은 누구나 자신의 동상(銅像)을 세우려는 모든 욕망을 철저하게 의식하고 자기 안에서 그 욕망의 뿌리를 뽑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고자 :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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