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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집서 삼겹살, 횟집은 떡볶이… 맛없는 관광객 메뉴

관광객 상대 일부 명동 한식집… 메뉴만 수십가지, 맛은 뒷전
    최윤아 구특교

    발행일 : 2016.01.22 / 사회 A1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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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떡볶이집. 메뉴판에는 떡볶이 말고도 삼겹살, 삼계탕, 해물 빈대떡 같은 메뉴가 한국어와 중국어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1인분(250g)에 2만4000원 하는 삼겹살을 주문하자 40분쯤 지나 종업원이 주방에서 바싹 구워진 삼겹살을 쟁반에 내왔다. 시중 음식점보다 비싼 이 식당의 삼겹살 두께는 메뉴판 사진보다 훨씬 얇았고 딱딱해 잘 씹히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홍콩계 중국인 관광객 2명은 부침개 1개(1만5000원)와 김치찌개 2인분(1만6000원)을 주문해 먹고 있었다. 부침개 한 조각을 입에 댄 두 사람은 "테러블(terrible·음식 맛이 왜 이래)!"이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부침개는 한쪽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중국인 관광객(22)은 "한식(韓食)이 맛있다는 여행기를 보고 한국을 찾았는데 오늘 점심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꼭 들르는 관광지 중 한 곳인 명동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음식점들이 350여곳 있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이 가운데 삼겹살·삼계탕 등 한식을 파는 업소가 60% 정도다. 그러나 일부 음식점은 수준 이하의 음식을 백화점식으로 늘어놓고 비싼 가격에 바가지 씌우듯 판매해 관광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명동의 일부 식당에는 '대표 메뉴'란 게 없다. 삼겹살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이유로 떡볶이 전문점, 쌀국수 전문점에서까지 너도나도 삼겹살을 팔고 있다. 떡볶이·삼겹살·짜장면을 한꺼번에 파는 곳도 적잖다. 음식점이 몰려 있는 명동의 200여m 거리에 있는 음식점 71곳 중 간판에 소개한 주(主)메뉴 외에 두 개 이상의 다른 메뉴를 함께 판매하는 음식점은 15곳(20%)이나 됐다.

    이 거리에 있는 한 횟집에선 생선회 말고도 20여가지의 다른 메뉴를 팔고 있었다. 기자가 주문을 하려 하자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고 묻더니 "한국인에겐 회만 팔고 떡볶이와 짜장면 같은 건 중국인한테만 판다"고 잘라 말했다. 이곳 떡볶이는 종류에 따라 1인분에 7000~1만원을 받았다. 일반 떡볶이 체인점(5000원)보다 2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명동의 한 음식점 주인은 "이 일대에서만 음식점 10여곳이 외국인용 메뉴만 따로 팔고 있다"고 했다.

    이런 식당을 이용한 외국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관광 차 한국을 찾은 인도네시아인 벨라(22)씨는 "메뉴는 많은데 대부분 맛이 역겨웠다(disgusting)"고 했다. 중국에서 온 레옹(Leong·20)씨는 "삼겹살 2인분에 찌게 하나를 시켰는데 6만4000원을 받더라"며 "바가지를 쓴 기분인 데다 맛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고 했다.

    반면 일본 음식업계는 '특성화' 전략과 품질 관리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오사카에는 즉석 라면박물관, 치킨 라면 팩토리 등 일본 전통 '라멘(ラ-メン)'의 내력을 배우고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관광 상품까지 있다. 일본 각지의 유명 라멘집 10곳이 한데 모여 있는 후쿠오카의 관광지 '라멘 스타디움'은 고객 평가가 낮은 점포는 퇴출하는 식으로 맛과 가격을 관리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중국 베이징의 왕푸징(王府井) 간식거리는 자체적으로 노점 규격을 표준화하고 일정 가격 이상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명동 음식점들에서 자기 발등 찍는 식의 경쟁이 시작된 것은 중국 관광객 급증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순대·떡볶이 같은 분식을 주로 팔던 노점상들이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삼겹살·떡갈비 같은 메뉴까지 팔기 시작하면서 관광객이 자주 찾던 한식당들도 이 음식 저 음식을 비싼 가격에 내놓게 됐다는 것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관광객을 상대로 저질의 음식을 팔면서 바가지를 씌우는 건 다시 오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픽] 서울 명동의 한 떡볶이 전문점 메뉴판
    기고자 : 최윤아 구특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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