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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64) 전 총리는 그리스 총리 중 가장 불운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가 총리였던 2010년에 그리스가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고, 위기 극복을 위해 긴축정책과 개혁에 시동을 걸었지만 야당과 각급 노동조합 등의 반발 속에 총리에서 물러났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아테네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가진 약 50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차분하게 또박또박 말했다. 곤란한 질문에도 얼굴이 붉어지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는 "개혁 추진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정치권이 힘을 합치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대(consensus)'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국가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썼는데 국민들에겐 인기가 없었다. 억울하지 않나.

"총리였을 때 이미 '난 재선(再選)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공무원 급여와 연금을 30% 이상씩 삭감했다. 국민들이 힘들어했고, 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것이 내 책임이었다. 개혁의 방향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총리가 된다 해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다."

―위기가 터진 지 7년째다. 위기가 오래될수록 국민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

"위기 발발 2년 전부터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따지면 9년이다. 그동안 그리스는 GDP(국내총생산)의 25%가 사라졌다. 국민 4명 중 1명이 실업자다. 청년 실업률은 한때 62%까지 치솟았고, 지금도 40% 수준이다.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직장을 얻어도 임시직인 경우가 많다. 국민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나쁜' 사회다."

―비슷한 시기 재정 위기를 겪은 아일랜드·스페인·포르투갈은 이미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왜 그리스만 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나.

"아일랜드 등 다른 나라들은 야당조차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린 달랐다. 일부 정당과 정치인들은 우리가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길이 있다고 했다. 나 이후에도 총리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국민투표도 여러 번 했다. 그럴 때마다 개혁의 동력은 떨어졌다. 바뀐 총리들도 결국은 내가 주장했던 방향대로 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기회와 시간만 낭비한 셈이다."

―그리스가 위기에 빠진 진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01년 유로존(유로화를 단일 화폐로 쓰는 유럽국) 에 합류한 이후 그리스는 매년 경제성장률이 5.5%를 넘었다. 유로존에 있는 다른 유럽국에서 쉽게 빌린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돈으로 집 사고 차 사고 월급 올려줬다. 사람들은 행복했다. 문제는 돈이 소비로만 흘렀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빚이 쌓였고, 어느 순간 폭발했다. 그때야 우린 그 많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았다."

―오랫동안 빚이 쌓이는데도 정부와 의회, 민간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은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2009년 총선 때 당시 야당이었던 우리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 눈치챘다. 하지만 사태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는 전혀 몰랐다. 정부는 진실을 숨겼다. 당시 총리는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6.5% 수준이라고 했다. 몇 개월 후 내가 총리가 된 뒤 확인해보니 15.7%나 됐다."

―그리스는 포퓰리즘이 정치·사회를 지배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포퓰리즘의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표를 주면 (유권자에게)특혜로 보답하는 불합리한 관행이 만연했다. 선거에 이기게 해주는 대가로 공무원을 10만명씩 늘렸다. 2000년부터 10년 사이 공무원 급여가 2배가 됐다. 일자리와 돈, 기회가 그렇게 왜곡됐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정부는 표를 얻는 데 돈을 쏟아부었다."

―개혁을 추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야당의 공감대를 얻는 것과 공무원의 관료주의를 뚫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스 위기를 통해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정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함께 책임지고 (개혁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국민이 자기 생각을 말할 기회를 주고 그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야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일한 후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더 많은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국민을 참여시키지 못한 것이다. 국민과 거리를 둬서는 안 된다."

'비운의 총리' 파판드레우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1888~1968)는 1940년대와 1960년대에 총리를 세 번 역임했고, 아버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1919~1996)도 1981~1989년 총리를 지냈다.

아버지 안드레아스는 총리 재직 시절 건강보험 혜택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 ‘그리스판 포퓰리즘’의 씨를 뿌렸다. 아들인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연금·급여를 줄이는 등 긴축·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했다. 아버지가 창당해 유력 정당으로 성장했던 사회당(PASOK)은 아들(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인기를 잃었고 결국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