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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현지 시각)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이 열린 미국 워싱턴DC 힐튼호텔. 취임 후 8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이 만찬에 작별을 고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올해로 102번째를 맞은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은 미국 대통령의 유머 감각을 뽐내는 자리다. 1920년부터 매년 열리는 미국 언론계의 최대 사교 행사로, 언론인은 물론 각계 거물과 세계적 스타들이 참석한다. 오바마는 이날 여야 인사를 가리지 않고 신랄한 풍자를 퍼부으며 2600명 참석자를 들었다 놨다 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권 주자들이 유머의 소재가 됐다. 특히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공화당 경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조롱'이 많았다. 오바마는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외교 경험이 없다고 걱정한다죠"라고 말하고는 "트럼프가 수년 동안 숱한 세계 지도자를 만났는데, 무슨 걱정이냐.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1990년대부터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를 인수해 매년 미인 대회를 주최한 경력을 비꼰 것이다.
오바마는 단골손님이던 트럼프가 올해 이 만찬에 불참한 것을 두고는 "오늘 트럼프가 안 와서 속상하다.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 유명인이 가득 차 있는데도 싫다고 했다. 이 만찬이 너무 싸구려라서 그랬나"고도 했다. 이날 만찬장에는 트럼프의 아들인 도널드 2세와 딸 버네사가 참석했다.
공화당을 향해서도 포문을 열었다.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을 지목하면서 "공화당 경선이 매우 잘 돼 축하한다. 계속 그렇게 하시라"고 말했다. 전당대회를 앞둔 당내 내분을 꼬집은 것이었다.
민주당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버몬트) 연방상원 의원도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힐러리에 대해서는 "클린턴 전 장관이 젊은 유권자층에 다가서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 이제 막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이웃집 아줌마 같다"고 말했다. 또 힐러리가 골드만삭스에서 거액의 강연료를 받은 것을 겨냥해 "오늘 내 연설에 대한 반응이 좋으면 나도 퇴임 후 골드만삭스에서 (강연을) 써먹어 봐야겠다. 그러면 상당한 '터브먼'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미 재무부가 새 20달러 지폐에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인 해리엇 터브먼을 모델로 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연결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으로 이같이 말한 것이다.
만찬장에 나온 샌더스를 소개하면서는 "민주당의 빛나는 새 얼굴"이라고 했다가 곧바로 그의 사회주의 성향을 겨냥해 "동지(comrade)"라고 불렀다.
오바마는 차기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 드러냈다. 그는 "내년에는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서게 될 텐데, '그녀'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 나온 여성 후보는 힐러리뿐이다.
임기 말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자신도 조롱했다. 그는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이제 사망 선고가 떨어질 날을 세고 있다"며 "의회 지도부가 더 이상 내 전화를 받지 않는 레임덕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영국을 방문했을 때를 거론하면서 "지난주 영국의 조지 왕자는 심지어 잠옷을 입고 나왔다. 외교 의전을 완전히 무시하다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라고도 했다. 윌리엄 왕세손의 3세 아들인 어린 조지 왕자가 잠잘 시간을 넘겨 잠옷 차림으로 오바마를 만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오바마는 "힐러리가 언젠가 내게 '새벽 3시에도 전화를 받을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는데, 이제 난 (나이가 들어) 새벽에 화장실 가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일어나 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패한 지난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자신의 안보 대처 능력을 강조하면서 유권자에게 "백악관에서 새벽 3시 울리는 전화를 (안보능력이 부족한) 오바마가 받게 하겠느냐"고 물은 광고를 빗댄 것이다.
오바마가 30여분 동안 연설을 하고 퇴장하는 순간,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로 그를 떠나보냈다.
기고자 : 윤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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