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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A〉 2002년 6월 당시 집권 여당 새천년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서울·경기·인천을 한나라당에 내줬다. 8월 재보선도 완패했다. 야당 대선 후보 이회창의 지지도는 치솟았다. 12월 대선에서 그의 승리는 기정사실로 보였다. 하지만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계기로 판세가 바뀌었고, 여당은 극적으로 역전승했다.

〈모델 B〉 2007년의 집권 여당 열린우리당도 잇단 선거 패배로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등 야당 대선주자들은 극적인 경쟁을 펼치는데 여당엔 내세울 후보조차 없었다. 진보 정권 10년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결국 500만표 차이라는 기록적 대패와 함께 정권을 내줬다.

지난 4월 총선에 참패한 새누리당은 요즘 그로기 상태다. 총선 이후 여당 대선주자들은 사라졌고, 야당 주자 간 경쟁만 국민의 눈과 귀를 붙잡는다. 모델 B와 상황이 비슷하다. 10년 집권의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점도 B와 닮았다.

하지만 현 상황이 모델 A와 닮은 점도 적지 않다. 선두에 선 야당 대선주자(이회창, 문재인)에게 강한 비토층이 존재한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야당(한나라당, 더불어민주당)이 반사이익으로 거둔 선거 승리를 자기들이 잘해서라고 착각하는 점도 똑같다. 고정 지지층을 가진 현직 대통령(김대중, 박근혜)이 있어 차기 주자를 어떻게 밀어주느냐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닮았다. 묵직한 지지율을 가진 제3당(정몽준의 국민통합21,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존재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과연 새누리당은 1년 8개월 뒤 대선에서 A 같은 역전승을 일궈내고 웃을까, 아니면 B의 길을 따라 어두운 터널로 들어갈까.

대통령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정권 재창출이다. 정권을 재창출한 대통령은 적어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권을 넘겨준 대통령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 DJ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YS에 대한 평가는 상당 기간 유보됐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게 '박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어느 정도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으냐'고 최근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두 번째 정도 된다"였다. 첫째는 민생·경제이고 둘째가 정권 재창출이라 했다. 그래도 박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박 대통령에게 정권 재창출 실패는 본인의 치세를 실패로 낙인찍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까지 재평가의 대열에 끌어들일 수도 있다.

총선 패배 이후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여권 안팎에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라고 과거의 사례들은 말한다. 모델 A 같은 역전승이 불가능하다는 법도 없다. 다만 조건이 있다.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어 주자(노무현)를 키워내고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을 그리고 연대(정몽준과의 단일화)해야 한다. 말 그대로 국민이 원하는 흐름을 잡아내 그 위에 올라탈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야당의 착각이 계속되면 더욱 좋다.

'내년 대선에서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당연하지만 여러 함의(含意)를 가진 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결국 박 대통령 하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