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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의 질레트 아동병원은 미국 최초의 장애 어린이 치료 병원이다. 정형외과 의사 질레트가 120년 전 설립했다. 당시 젊은 질레트는 수많은 근골격계 장애 어린이가 방치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에 그는 어린이병원을 만들자고 미네소타 의회를 설득했고, 그것이 질레트 아동병원의 씨앗이 됐다. 이후 기부금이 답지했고, 뜻을 같이한 의료진이 몰려들었다. 질레트 아동병원의 정신은 미국 전체로 퍼져 나갔다.

몇 해 전 미 테네시주 밴더빌트대학 아동병원을 시찰간 적이 있다. 널찍한 진료 공간과 쾌적한 치료실은 물론, 병원 전체가 어린이 놀이동산에 온 듯했다. 소아 중환자실은 입이 벌어질 정도의 첨단 설비로 채워졌다. 그 돈이 어디서 왔을까. 밴더빌트 아동병원 수입의 3분의 1 정도는 기부금으로 채워진다.

중환자실 입구에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현직일 때 백악관에서 날아와 아동병원 증축 개원식 축사를 한 모습이 걸려 있다. 미국은 어린이병원 개원식에 대통령이 못 오면 영부인이라도 참석하는 게 관례다. 부시 대통령이 중환자실 의료진과 어울려 찍은 사진도 눈에 띄었다. 시민은 어린이병원에서 자원봉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눈길을 우리에게 돌려보자. 국내 최고 국립대 병원이라는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 대부분의 대학병원 로비는 번듯하고 화려한데 이곳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단출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대기실 철제 의자는 서울역 대합실만도 못하다. 비좁은 진료 대기 공간엔 서 있는 아이와 보호자들이 즐비하다. MRI를 추가로 설치할 공간이 없어 검사 한번 받으려면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서울대는 어린이병원 독립건물이 있다는 게 위안이다. 2000병상 넘는 유명 대학병원 대다수에 독립된 어린이병원이 없다.

어린이병원이 만성 적자에 시달리니 투자할 여력이 없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은 지난해 158억원 손해를 봤다. 지난 30년간 적자를 면한 적이 없다. 소아 의료수가가 낮다 보니 어린이 환자가 오면 올수록 손해 보는 구조다. 의료의 질을 말할 때 대표적인 지표가 병상당 의사 수다. 미국 보스턴 어린이병원이 4.93명이고, 서울대는 0.75명이다. 미국과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두 배 차이가 나지 않는데, 어린이병원 의사 수는 9배 차이다.

요즘 해외 환자 유치 사업이나 국제 학술행사로 한국 병원을 찾는 외국 의료진이 부쩍 늘었다. 다들 높은 수준의 병원 시설과 임상 기술에 놀란다. 그런데 한 유명 사립대 병원 어린이병원장은 말한다. 어린이병원만큼은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아정형외과 교수 출신이다. 근골격계 장애를 가진 어린이 환자를 위해 의술을 펼쳤다. 정 장관이 37세 젊은 나이에 선진 의료를 배우러 간 곳이 바로 미네소타 질레트 아동병원이다. 거기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와 어린이 환자 치료에 임했다. 그가 복지부 장관으로서 아동 진료수가와 어린이병원 지원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한국판 질레트'가 됐으면 한다. 그러면 대한민국 미래가 바뀔 것이다. 기고자 : 김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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