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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현대문학사의 위대한 시인을 기리는 표지판이 하나 섰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이 살았던 곳임을 알리는 '정지용 초당(草堂) 터' 표지판이다. 물론 초당의 흔적은 없다. 은평구는 이곳에 여섯 칸짜리 초가집을 복원하기로 했다. 지용은 6·25 때 납북되기 전 잠시 녹번리에 살았다. 그렇다 해도 많은 사람은 '정지용' 하면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그의 고향 충북 옥천(沃川)을 떠올린다. 은평구는 지용을 "우리 고장의 시인"이라고 했다.

은평구는 지금 '한국 문학 속의 은평'이란 특별전도 열고 있다. 은평구와 연고 있는 문인 100여명을 전시하며 은평구를 "한국 문학의 뿌리이자 고향"이라고 주장한다. 은평구에 50년째 살고 있는 소설가 이호철과 20여년 살았던 최인훈, 김광주·김훈 부자(父子)는 특별 코너에 모셨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신라 시대 문장가 최치원과 인연 있는 청담사 터, 한글을 창제한 성삼문 신숙주 등이 독서했던 진관사가 있다는 것까지 내세운다.

'정지용 초당 터' 표지판이나 '한국 문학 속의 은평' 특별전이나 뚜렷한 목적이 있다. 정부가 500억원 들여 세우는 국립 한국문학관을 은평구에 유치하려는 것이다. 은평구뿐 아니다. 서울 동작구, 대구, 인천, 광주, 경기도 파주·군포, 강원도 강릉·춘천·원주, 충북 청주·진천, 전북 군산·익산, 전남 장흥….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가 저마다 '한국 문학의 중심'임을 주장하며 국립 문학관 유치에 뛰어들었다. 강릉은 김시습의 '금오신화'와 허균의 '홍길동전' 발상지인 데다 신사임당·허난설헌을 배출했다는 걸 내세운다. 대구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운수 좋은 날'의 소설가 현진건을 내세운다.

지자체에 따라선 아전인수(我田引水) 식 과장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 우리 지자체들이 자기 고장 문인들 자랑하는 일로 경쟁한 적이 있나. 하나의 도시가 정치적 힘이나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고 문학의 중심이 되기 위해 열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보기 좋다.

작년 국회를 통과한 문학 진흥법에 따라 추진되는 국립 한국문학관은 올 상반기 적지(適地)를 선정해 2019년 문을 연다. 전국에는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고 하루 관람객이 열댓명 될까 한 박물관·미술관·기념관이 수두룩하다. 국립 문학관을 무엇으로 채우고 어떻게 시민들 발길을 불러모을까 정부나 문단·학계, 해당 지자체는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문학관 방향과 전시 대상 선정을 둘러싸고 이념이나 정치적 해석이 끼어들어 모처럼의 문학관 건립이 또 한 차례 사회 분열을 낳는 일은 피해야 한다.

어디로 유치가 결정되든 지자체들이 지금의 열정과 의지를 살려 곳곳에 문학의 향기 가득한 공간들을 만들려는 초심을 이어갔으면 한다. 중국 루쉰(魯迅) 기념관이 그의 고향인 샤오싱에만 있으란 법 없다. 베이징에도 있고 상하이에도 있다. 일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출생지 도쿄뿐 아니라 그가 교직 생활을 한 구마모토, 마쓰야마에서도 '내 고장 문인'이다. 은평구 주민들에게 정지용 시인 이름이 새롭게 각인되듯이 고장마다 자랑하는 문인들의 이름이 되살아난다면 그것으로 문학 진흥의 싹은 트는 것이다. 기고자 : 김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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