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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에서 '책공방북아트센터'를 운영하는 김진섭(50)씨는 디지털 기술에 밀려 '종이책'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집스럽게 수제(手製) 책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그는 "뭐든 입력만 하면 뚝딱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세상이지만, 책을 만들며 물성(物性)을 직접 경험하면 무언가 달라진다"며 "그건 삶을 바꾸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 책 만들기'를 권유하는 이유다.

그는 한때 날리는 잡지 편집자였다. 여성지와 청소년 잡지 등을 만들다가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e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사무실을 내고 소형 출판사들 책과 대기업 잡지를 편집해주며 인기를 끌었다. '붕어빵식 책을 만들지 말자'는 그의 모토에 많은 이가 동감했다. 하지만 이도 잠깐이었다. 종이책 시장이 쪼그라들고, 제작 기술이 첨단화되면서 품이 많이 들어가는 그의 작업은 점점 설 자리가 좁아졌다. 사무실은 신사동에서 문정동 가든파이브 상가로 옮겼고, 2013년에는 완주의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 유전(流轉)의 십여 년 동안, 그는 애초의 본업보다는 다른 일에 더 몰두했다. 전국에서 버려지는 인쇄기, 책 제작 공구(工具), 납활자 등을 모으기 시작한 것. 어디서 인쇄소 문 닫는다는 소리만 들리면 달려가 기계를 들였다. 어느덧 인쇄기 100여 대에 공구 1000여 점이 모였다. 그는 "활자 주조기, 활판 인쇄기 등 한 시대 우리 문명을 책임졌던 기계들이 고철값에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최근엔 고물상으로 가기 직전 자신이 '구조한' 공구들을 모아 '북툴스'(안그라픽스)란 책을 냈다.

인쇄·제본 기술은 직접 구텐베르크의 고향인 독일 마인츠의 아카데미를 찾아가 배웠다. 그렇게 가죽으로 책 거죽을 만들고, 바늘로 책을 깁고, 인두를 달궈 제목을 새기는 방법을 익혔다. "우리는 기술 문명을 참 가볍게 보는 것 같아요. 출판사들이 썼던 그 어마어마한 양의 활자가 다 어디 있는 줄 아세요? 바닷속이에요. 모조리 녹여서 낚시 추로 만든 거죠."

책 공구 수집 소문이 나면서 열네 살 때부터 을지로에서 일한 한 제본소 사장은 일본강점기 때 자기 선배한테 물려받은 책 제목 제작용 '불박기 인두'를 "잘 써달라"며 보내왔다. 활판인쇄기 부속을 흩어놓으면 순식간에 조립하는 것이 가능한 '맥가이버' 인쇄소 사장도 "이제 당신이 맡아 달라"며 기계를 기증했다. 이 기계들은 삼례문화예술촌의 180여 평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선배들이 아직 생존해 있을 때 인터뷰를 채록해 매뉴얼 북이라도 만들어 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기고자 : 신동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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