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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사진〉가 사실상 확정됐다. 트럼프는 3일(현지 시각) 열린 인디애나주(州) 경선에서 53.3%를 득표해 36.6%를 얻은 테드 크루즈(텍사스) 연방 상원 의원과 7.6%에 그친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를 압도했다. 트럼프는 이날 대의원 57명 가운데 최소 51명을 더 확보해 과반 대의원 1237명의 85%인 1048명을 확보했다. 게다가 트럼프의 뒤를 쫓던 크루즈가 이날 "길이 없다"며 경선 중단을 선언하면서 트럼프는 대선 출마를 알린 지 1년도 안 돼 160년 전통 공화당을 접수했다.

승리 확정 후 트럼프는 "우리는 11월 대선에서 크게 이길 것"이라며 자신의 선거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쳤다. "트럼프만은 안 된다"던 공화당 지도부도 손을 들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라인스 프리버스 위원장은 곧바로 트위터에 '트럼프가 사실상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거다. 이제 단합해 힐러리 클린턴을 꺾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글을 올렸다. 케이식 주지사는 경선을 끝까지 하겠다는 태세이지만 확보 대의원 수가 153명에 불과해 변수가 못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후보 확정에 미국 주류 사회의 여론은 충격, 분노, 한탄이 뒤섞인 분위기이다. 뉴욕타임스는 4일자 사설에서 "트럼프는 현재 주요 정당이 내놓은 대통령 후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고 준비가 덜 된 사람"이라면서 "링컨의 정당임을 자랑스러워하던 공화당이 어떻게 트럼프를 간판으로 내세울 수 있느냐"고 썼다. 그러면서 "공화당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윤리·공공정책센터' 헨리 올슨 선거전략가는 "160년을 이어온 전통의 공화당이 스스로 목숨 줄을 끊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며 충격을 전했다. 한 공화당원도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에 "(트럼프가 후보가 되는) 이런 당이 나의 당이라면 더는 공화당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자문관을 지낸 엘리엇 코언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이제는 제3 후보, 제3당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이제 다 끝났다. 기질이나 가치관, 정책 등에서 완전히 부적합한 후보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며 "힐러리의 좌편향과 트럼프의 몰상식을 지적하고,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전할 후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USA투데이는 사설에서 "공화당은 긴급 진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신문은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고, 31개 주에서 다수당인 공화당이 트럼프 한 명 때문에 벼랑에 몰렸다"면서 "소수 인종과 처음 투표하는 밀레니얼(젊은 세대), 여성 유권자의 지지가 필요한 공화당이 트럼프를 내세워 어떻게 표를 얻으려고 하느냐"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지명 이후 미국 보수가 분열하고 있다고 했다. 존 매케인 연방 상원 의원의 정치 참모였던 마크 솔터는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지지를 선언했고, 경선 경쟁자였던 린지 그레이엄 연방 상원 의원은 후보 지명에 끝까지 반대하고 있다. 반면 바비 진달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상징하는 위클리 스탠더드의 빌 크리스톨 편집장은 "트럼프는 '절대 안 돼(Never Trump)'라는 생각이지만, 절대라는 말은 결코 않겠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후보 확정으로 많은 보수주의자가 갈등과 고민을 거듭하고 있으며, 심지어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며 "저항파와 투항파, 눈치 보기파로 갈라져 있다"고 했다.

일부 언론은 트럼프 후보 확정이 공화당의 자업자득이라는 분석도 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중산층을 일궈내겠다', '일자리를 만들겠다', '전역 군인의 복지를 늘리겠다'면서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공화당에 대한 실망감이 새로운 지도자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얼마나 공화당이 못했으면 외국인 혐오와 고립주의, 허무맹랑한 공약을 쏟아낸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 하나로 유권자를 포섭했겠느냐"고 말했다.

뉴욕데일리뉴스는 4일자 1면 표지에 공화당의 상징인 코끼리가 관 속에 누워있는 삽화를 게재했다. '공화당(1854~2016) 잠들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삽화에는 '한때 위대했던 정당이 트럼프 전염병으로 숨졌다'는 설명이 붙었다.

공화당과 함께 인디애나주 경선을 치른 민주당은 힐러리가 47.5%를 득표해 버니 샌더스(버몬트) 연방 상원 의원(52.5%)에게 졌다. 하지만 득표 비례로 대의원을 확보하는 방식이라 이날 확보한 대의원 수는 6명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힐러리는 확보 대의원 수를 2220명으로 늘리면서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2383명)의 93%를 얻어 승리를 사실상 확정했다. 다만 샌더스는 끝까지 경선을 치르겠다는 방침이라 최종 결론은 6월 14일 워싱턴DC에서 날 것으로 보인다. 기사 A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