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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하고 친하니까 무죄 받게 해줄게요."

아들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김모씨는 2013년 부장판사 출신 한모 변호사의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띄었다. 김씨는 수임료로 3000만원을 주고 2심에서 한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런데 재판 결과는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아들은 오히려 4년이 더 붙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속았다고 느낀 김씨는 대한변호사협회에 한 변호사에 대한 진정을 넣었다. 변협 조사 과정에서는 한 변호사가 다른 의뢰인에게도 '판사를 잘 아는데 휴가비를 줘야 한다'며 1000만원을 받아갔다가 진정을 당한 사실도 드러났다.

부부장 검사를 지낸 이모 변호사는 2012년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수임료 3000만원과 성공보수 7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사건을 수임했다. 그는 의뢰인에게 '판사 아들이 의대생인데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한다'며 성공보수로 받을 돈 중 1000만원을 미리 달라고 했다. 그러나 변협이 조사해보니 이 변호사는 선임계도 내지 않고 변호활동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다른 사건 의뢰인에게는 '대법관과 같이 근무한 적 있는데, 2000만원을 베팅해보자'고 꼬드겨 돈을 받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변협은 그에게 과태료 1000만원을 물렸다.

최근 몇 년 사이 변협이 문제삼은 판·검사 출신 전관(前官) 변호사들의 수임 사례들이다. 판사 출신 김모 변호사가 '2심 주심 판사와 술자리도 함께한 사이'라며 의뢰인에게 착수금 1500만원, 성공보수 4000만원을 받았다가 과태료 400만원 처분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현직 판·검사들과의 친분을 내세워 의뢰인을 속이는 전관 변호사들을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변협 관계자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일이고, 의뢰인이 적극적으로 진정을 하고 증거를 대야 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그 때문에 법조계에선 비슷한 일이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기 범죄나 마찬가지인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변호사 시장에선 여전히 판·검사와의 친분이 사건 수임을 결정짓는 요소로 통하고, 전관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에게 이를 은근히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에 근무했던 변호사는 "일부 로펌은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기수(期數)별로 있어 어떤 재판부에도 대응 가능하다'는 식의 영업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며 "같은 법원이나 검찰청에서 근무했거나 사법연수원 동기생인 경우엔 의뢰인들이 쉽게 넘어간다"고 했다. 서초동의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아예 '판·검사와 친한 변호사를 찾아달라'고 먼저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기고자 : 양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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