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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한 국내 상업영화에 대한 실망이 걱정으로 치달을 무렵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이 개봉해서 다행이다. 이 영화는 자기 색깔을 갖고 있고, 그 색깔을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유지할 수 있는 뚝심을 갖고 있다. 흥행 요소를 복사해서 붙여 넣는 식으로 만들거나 장르의 관습을 답습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탐정 홍길동'은 당당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탐정 홍길동'은 고전 소설 홍길동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출생의 비밀, 아버지와의 복잡한 관계, 사회의 악을 처단하는 영웅 등 원작의 중요한 요소는 그대로 살리면서 캐릭터를 위악적으로 비틀었다. 불법 흥신소 '활빈당'에서 일하며 정의를 구현하는 홍길동은 악당보다 더 악질이다. 거짓말을 수시로 하고, 고문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20년간 어머니를 죽인 원수 김병덕을 찾아다니다 강원도 외딴 마을에 가게 된다. 하지만 김병덕은 이미 납치됐고, 그의 손녀 동이와 말순이만 남아 있다. 홍길동은 동이와 말순을 데리고 김병덕의 뒤를 쫓다가 국가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검은 조직 '광은회'의 실체를 알게 된다.

1980년대 언젠가, 강원도의 어딘가라는 시공간 배경이 있는데도 이 영화는 동화 같기도 하고 만화 같기도 하다. 이 영화는 고전적인 누아르 영화를 한국식으로 변주해 우리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의 큰 성취 중 하나다. 조성희 감독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모두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이라서 현실에 굳건하게 발을 딛고 있는 영화로 만들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과 다른 세계의 모습을 그릴 여지가 있는 80년대를 택했다"고 했다.

단편 '남매의 집'(2009), 장편 '짐승의 끝'(2010)으로 주목받았던 조성희 감독은 첫 상업영화로 '늑대소년'(2012)을 내놨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어딘가 있을 법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조성희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세계는 인공적이지만 세련됐고, 이질적이지만 정교하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배타적'이라는 얘기다. 어떤 취향에 따라서는 이 영화를 싫어할 수도 있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각(角)이 살아있는 영화들의 숙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순은 좋아하게 될 것이다. 예닐곱 살 정도 된 이 아이가 반 박자 빠르거나 느리게 엉뚱한 소리를 할 때마다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도 '피식'이 아니라 '하하하' 정도다. 이 '반 박자'는 조성희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이기도 하고, 말순을 연기한 배우 김하나 특유의 호흡이기도 하다. 조성희 감독은 "인형처럼 예쁘고 연기를 잘하는 아역 배우도 많았는데, 김하나는 연기 경험이 하나도 없었다. 대사를 하다가 카메라를 보거나 다른 소리를 할 때도 잦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가 갖고 있는 개성을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영화가 시리즈로 제작되는 걸 기대해본다. 조성희 감독도 이런 욕심을 영화에서 숨기지 않는다. 이번 편에서 홍길동의 성격과 전사(前史)를 보여줬으니 다음 편부터 본격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편이 '탐정 홍길동'의 속편이든 아니든, 조성희 감독이 만든 것이라면 일단 궁금할 것 같다. 4일 개봉. 기고자 : 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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