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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필리핀 중부의 작은 섬 팡아난. 섭씨 42도의 더위 속에 주민 300여명이 두 손에 물 양동이를 들고 작은 교회당 옆으로 모여들었다. 6000L들이 물탱크 3개에 모아둔 정수(淨水) 처리된 물이 수도꼭지로 흘러나오자 환성이 터졌다.

플라스틱 컵을 든 아이들이 물을 받아 마셨다. 남편과 사별하고 세 자녀를 키우는 테레사 바론(29)씨는 "소득의 3분의 2가 생수 비용으로 나갔는데, 이제 물값을 아껴 아이들 학비에 보태게 됐다"면서 "한국인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팡아난섬엔 물이 없다. 현무암질로 이루어진 화산섬인 탓에 물이 고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물장수가 배로 실어 나르는 물을 사 마셔야 했다. 필리핀 본토에서 5갤런(18.9L)에 15페소(약 380원)인 생수 값은 이 섬에선 35페소로 뛴다. 낚시와 미역 채취로 하루 150페소쯤 버는 주민들(2300명)에겐 큰 부담이다. 빗물을 모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지만 비위생적이라 배탈을 앓는 사람이 많다. 수인성(水因性) 질병과 피부병도 잦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지난해부터 필리핀의 물 없는 섬들에 빗물식수시설을 보급하고 있다. 지붕에 내린 빗물을 모아 저장하고 정수해주는 장치다.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물탱크에 보관된 물은 햇빛과 공기가 차단돼 1개월간 변질되지 않는다. 설치 비용은 삼성디스플레이 임직원의 기부로 마련했다. 이런 빗물식수시설은 작년부터 필리핀 4개 섬에 지어져 6000여명이 깨끗한 물을 얻게 됐다. 최재봉 희망브리지 후원개발팀 과장은 "마을 주민들이 외부의 도움 없이도 빗물식수시설을 유지·관리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는 필리핀·베트남·스리랑카에 빗물식수시설 12개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기고자 : 김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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