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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藤本建二)를 2010년 12월 서울에서 만났다. 김정일 사망 1년 전이었다. 1989년부터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그는 차남 정철, 3남 정은의 '놀이 상대' 역할도 겸했다. 후지모토는 "김정일이 간부들 앞에서 '정철이는 마음이 약하고 여자 같지만, 정은이는 남자답다'며 김정은을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밝혔다. 북한 권력은 그의 예상대로 김정일에서 김정은에게 넘어갔다. 이쯤 되면 대북(對北) 1급 정보 소스다.

김정은에 대한 정보는 8할이 '믿거나 말거나'다. 풍문이 많고 확인이 안 된다. 그런데 그는 정말 김정은에 대해 많이 아는 듯 말했다. 김정은이 15살 때부터 '조니워커' 최상품을 즐겼고, 자신과 '이브 생로랑' 맞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김정은이 "나는 이렇게 잘 먹고 사는데 인민들은 어떻게 살까"라는 말도 자신에게 했다고 전했다. 지어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당혹스러웠다. 어두운 로비에서 두건에 검은 선글라스라니. 한눈에 후지모토라는 것을 알 만큼 튀는 차림인데 그는 "북한 정보원들의 미행 때문에 위장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라면 그냥 선글라스 벗고다니라"고 말할 뻔했다. 자신의 주거지도 비밀이라면서 명함에는 사무실 주소가 적혀 있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많았다.

2001년 "식자재를 사러 다녀오겠다"며 사실상 일본으로 탈출했던 후지모토였지만 김정은에게 꼬박꼬박 '대장 동지' '장군'이라는 존칭을 붙였다. 누가 인터뷰 현장을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극존칭을 사용했다. 인터뷰 내용도 '김정은은 지도자감이다. 그가 북한 인민을 잘살게 해주길 기대한다'는 당부가 많았다. '저 사람, 언젠가 김정은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구나'라는 느낌이었다.

이후 김정은은 후지모토를 여러 번 북으로 불렀다. 어릴 적 먹었던 참치 초밥 맛을 그리워했다는 말도 들렸다. 그런데 기자가 기억하는 후지모토의 미각(味覺)은 특별한 게 없었다. 2010년 당시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안내인은 "그가 입맛이 까다롭다. 맵고 짠 한식은 싫어한다. 고급 호텔 일식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마감 시간이 촉박했기에 못 들은 척하고 근처 해물찜집으로 데려갔다. 맵고 짜고 MSG가 듬뿍 들어간 듯한 해물찜이었다. 그는 부인은 아니라는데 같이 산다는 중년 여인과 함께 해물찜을 다 비우더니 밥까지 볶아 먹었다. 김정일 부자(父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그의 입맛이 이렇게 저렴할 줄이야. 보안 때문이라더니 해물찜에 땀이 나자 두건이고 뭐고 벗어 던졌다.

이렇게 엉성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그를 통해 김정은은 지난달에도 '나는 전쟁할 생각이 없다. 미국의 압박에 울컥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정일 일가 '비밀 폭로자'로 알려졌던 후지모토는 김정은 대변인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의 말을 가려서 들어야 할 이유다. 기고자 : 정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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