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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 센터가 5일(현지 시각) 발표한 미국의 대외정책 관련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 57%가 "미국은 자체 문제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다른 나라의 문제는 해당국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수치는 퓨리서치가 관련 항목을 조사한 이래 가장 높은 것으로, 2013년 52%에서 3년 만에 5%포인트가 올랐다. 2002년에는 응답자의 30%만이 외국 일에 신경 쓰지 말자고 했는데, 15년도 안 돼 2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방위비를 거론하며 "방위비를 100% 내거나 아니면 스스로 방어하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 같은 '신(新)고립주의'가 현실 감각 없는 공허한 내용이라고 평가해 왔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트럼프가 거친 언행에도 왜 인기를 끄는지 보여준다.

트럼프는 최근 발표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외교 독트린을 통해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계속하기는 어렵다"며 "대외 개입을 줄이고,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인 남녀 2008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12~19일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의 문제까지 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의 41%는 '미국이 너무 과도하게 세계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70% 미국인은 다음 대통령이 집중해야 할 과제로 '국내 정책'을 꼽았고, '대외 정책'은 17%에 불과했다. 이 같은 결과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아프간전 종전을 선언하는 등 나름 해외 분쟁에서 발을 빼려 했지만, 여전히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등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최근에 우크라이나와 발트해 지역에서 러시아와 날카롭게 대립하고,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마찰을 빚는 등 과거 냉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미국인들이 마음을 더 닫았다.

군사·안보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고립주의'가 커졌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49% 응답자가 '(자유무역협정 등의) 대외 경제 개입이 미국 내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낮추고 있어 좋지 않다'고 답했다. '대외 경제 개입이 새로운 시장 창출과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좋다'는 응답자는 44%였다. 3년 전만 해도 '좋다'는 응답이 66%, '나쁘다'가 25%였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완전히 역전됐다.

최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버몬트) 연방 상원 의원이 미시간과 위스콘신주(州) 등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여파 등으로 쇠락한 러스트 벨트(중북부 공업지대)에서 반(反)자유무역 정서를 자극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꺾은 것도 이번 조사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무역협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 상당수가 샌더스를 지지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도 이런 흐름을 간파하고 "자유무역이 미국을 죽이고 있다. 중국에 일자리를 다 뺏겼다"면서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힐러리가 국무장관을 하면서 FTA, 그리고 일본 등 12개국과 체결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한 점을 공격 포인트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힐러리마저 과거 입장을 바꿔 TPP에 반대하는 등 모든 대권 주자가 보호무역 쪽으로 돌아서면서, 경제 고립주의가 확산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TPP의 좌초는 호재다. 그러나 한·미 FTA의 경우는 트럼프의 외교·안보팀 수장인 제프 세션스(앨라배마) 연방상원 의원이 꼭 집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어 재협상 가능성이 있다.

[그래픽] 증가하고 있는 미국 내 고립주의 여론 기고자 : 윤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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