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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가 있지만 살아보니까 촉이지지(觸而知之)도 있다. 촉이지지는 손으로 만져보고 몸으로 접촉해봐야 안다는 뜻이다. 목가구가 바로 촉이지지의 대상이다. 앉은뱅이 책상[書案], 간이 의자, 문갑, 차와 찻잔을 넣어 놓는 다장(茶欌)은 손으로 자꾸 만져볼수록 정이 든다. 나무와 인간의 피부는 접촉할수록 친근해진다. 인간의 호흡과 숨결을 다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가구가 방 안에 있으면 의식이 외부로 향하지 않고 자꾸 안으로 향한다. 이만하면 됐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상하게도 목가구가 의식을 안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목가구도 수백년 된 골동이 있고, 요즘 장인이 새로 만든 것도 있다. 각기 장점이 다르다. 묵은 맛과 새 맛, 묵은 김치와 겉절이의 차이라고나 할까. 나의 취향은 묵은 김치와 겉절이를 합친 맛을 좋아한다. 그러나 경륜과 패기를 겸비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목가구도 세월의 깊이와 현대적 실용을 통합한 스타일은 없을까? 소목장 고재(古才) 김현준(51)의 작품이 이 두 가지 상반된 욕구를 만족시켜 주었다. 목재는 백년이 넘은 골동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디자인은 실용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서울 경기 지역의 부자 양반집은 한옥을 지을 때 춘양목을 사용하였다. 춘양목은 최고의 소나무이다. 특히 송진이 많이 들어 있어서 세월이 흘러도 잘 썩지 않는다. 그래서 비쌌다. 부잣집에서 사용한 목재이다. 경기 지역의 200~300년 된 부잣집 한옥을 해체할 때 나온 춘양목 대들보와 기둥은 지금도 튼튼하다.

제주도에서도 고재(古材)가 나온다. 굴무기와 사오기가 그것이다. 굴무기는 제주의 느티나무를 가리키는 제주도 사람의 표현이다. 사오기는 벚나무, 배나무를 지칭한다. 아주 단단한 재질이다. 제주의 특수한 토양과 풍파를 수백년간 견디며 자란 사오기는 초가집의 마루나 부엌 문짝으로 사용됐다. 김현준은 서울 부잣집 기둥에서 나온 춘양목과 남쪽 섬 제주도에서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사오기를 조합해서 책상을 만들고 다장을 만들었다. 그 조합을 보노라면 마치 부자와 빈자(貧者)의 혼백(魂魄)이 서로 사이좋게 얽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용헌 기고자 : 조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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