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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14년 9월 평창올림픽호를 맡았을 때 한진그룹 사정은 좋지 않았다. 처음엔 그룹 경영 전념을 이유로 고사했다. 하지만 정부의 간곡한 권유를 받고 "유치에 앞장선 사람으로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올림픽 성공 개최에 앞장서겠다"며 중책을 맡았다.

그가 조직위원장에 올랐을 때 '평창호'는 망망대해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표류 중이었다. 조직위의 주 구성원인 중앙정부와 강원도 파견 공무원들은 파견 기간만 채우고 원래 소속 기관으로 돌아갈 궁리만 했다. 그는 "끝까지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지금 빠지라"고 강한 목소리를 내면서 조직위원장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평창은 분산 개최 논란과 경기장 건설 지연 등 수많은 난관을 무난히 돌파한 끝에 올해 본격적인 운영 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함께 끝까지 갈 것으로 생각했던 조 회장이 평창호에서 내렸다. 위기에 빠진 한진그룹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고, 형식은 '자진 사퇴'였다. 하지만 사퇴 발표 전날 정부 고위 관계자가 조 회장을 만나 위원장 사퇴를 종용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며칠 전부터 청와대 주변에서 이상한 징후가 보였다는 소문도 들린다. 사퇴 후 몇 시간이 안 돼 대체할 내정자가 나온 것도 '자진 사퇴'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이희범 신임 위원장은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 이공계 출신 첫 행정고시 수석 합격에다 공무원과 기업인으로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이력만 따진다면 한 조직의 수장이 되기에 무리가 없다.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확실한 비전을 갖고 조직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맡을 수 있는 자리이다. 하지만 조직위원장의 역할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스포츠 외교력이고 그 바탕이 되는 것이 인적 네트워크다. 올림픽을 총괄하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나 종목별 국제연맹 모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지금까지 전례를 보면 탄탄히 다져놓은 인맥을 통해 어려운 문제를 생각보다 쉽게 푼 경우가 꽤 많다.

조 회장의 퇴진으로 평창 조직위에는 IOC와 허심탄회하게 말할 사람이 없어졌다. 현재 조직위 상층에 새 조직위원장을 도와 인적 관계를 맺도록 도와줄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나 체육계가 신뢰를 쌓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국제적 인적 네트워크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IOC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진선 전 조직위원장에 이어 조 회장이 대화 테이블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IOC가 머리를 맞대고 준비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사이였다. 한국 스포츠 외교가 그동안 쌓아올린 탑을 스스로 허물고 원점에서 재출발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 위원장 선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부가 혹시 올림픽만 성공적으로 치르면 국제적 스포츠 역량이 절로 커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기고자 : 강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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