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저는 상호(相好·인상)가 원만치 못해서…."

최근 만난 한 스님은 이렇게 말머리를 꺼냈다. 첫인상이 과연 우락부락(?)했다. 출가 전 유도 선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첫인상은 지워졌다. 소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좌중의 미소를 자아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그에 대한 인상은 '미소'로 남게 됐다.

그 스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인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돌아와 책상 앞에 붙여놓은 청화(1923~2003) 스님 사진을 다시 보게 됐다. 기자는 10여년 전부터 청화 스님 사진을 붙여놓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시선을 약간 아래로 향하고 있는 사진 속 스님의 표정은 더없이 맑다. 입가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 맑고 시원하게 해주는 미소다. '염불선'으로 잘 알려진 스님은 40여년간 암자를 순례하며 수행했고 철저히 청빈과 계율을 지켰다. 가까이서 모셨던 분들은 '보살행의 화신'이었다고 말한다. 본인의 수행에서 어려운 이웃에 대한 마음 씀씀이까지 솔선수범했다. 그의 미소에는 삶에서 우러난 향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할 때면 고개 들어 책상 앞 사진을 한 번씩 보곤 한다.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인상은 너무도 중요하다. 누구나 느끼듯 한 사람의 표정은 이내 주변에 전염된다. 인상 하나로 주변에 행복감을 주기도 하고,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전염되고 있는 '분노의 일상화'는 매우 위험하다. 드라마와 영화, 신문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순간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이다. 도로에서 매 순간 벌어지는 보복 운전은 또 어떤가. 도처에 성난 얼굴들이다.

우리는 지난 세월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절대 빈곤은 벗어났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절실히 깨달았다. 물질의 발달과 풍요로움은 결코 정신적인 안정과 발전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가 설파한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주 발간된 조선일보 수요섹션 '더 테이블'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영국 BBC가 추정한 '직업별 자동화 대체율'이었다. 뒤집어 읽으면 인공지능(AI) 시대에 각 직업이 살아남을 확률을 추정한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텔레마케터, 법률 비서 등은 자동화 대체율이 매우 높았다. 반면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힘든 직업으로는 교육 전문가, 심리학자, 성직자가 꼽혔다. 결국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분야만큼은 자동화 기계든 인공지능이든 대체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매끄러운 설교, 법문, 강론까지는 기계가 만들 수 있지만 사람과 교감하면서 위로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문명이 발전했음에도 오히려 커진 불안과 분노,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직업으로 성직자가 꼽혔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세상은 종교인들에게 분노를 녹이고 행복감을 키워줄 미소와 말 한마디를 더욱 절실히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