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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꼬였을까. 국책은행에 대한 대규모 자본 확충이 논란이 되자 일각에선 정부가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대우조선해양을 제때 못 파는 바람에 이 지경까지 왔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2008년 한화에 어떻게든 떠넘겼어야 했는데….' '조선업 경기가 반짝 호황이었을 때 팔아치우기만 했어도….' 그런데 '왜 못 팔았는가'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본지 인터뷰에서 "제가 장관이던 2011년 말부터 2013년 초가 대우조선해양 매각의 골든타임"이었다며 "산업은행 총재를 포함한 모든 정책 결정자가 매각 이후 헐값 매각이나 특혜 시비에 휘말릴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한 산은 관계자는 홍 장관의 발언을 두고 "다 지나고 난 뒤에 그때가 타이밍이었다는 말은 누가 못하냐"고 꼬집었다. 홍 장관이 말한 시기, 산은 수장(首長)은 전 정권의 실세 장관 출신이었다. 정권 후반기였다고 해도 실세조차 '왜 헐값에 팔았느냐'는 훗날의 책임 추궁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일부 산업은행 직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계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아시아·유럽 부문을 인수한 일본 노무라증권이 최근 대대적인 인력 감축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앞서 인수 협상에 나섰던 산업은행이 아무리 싼값에 리먼을 사들였어도 지금처럼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면 국회에서 당장 청문회를 요구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거액의 정부 자금이 왔다갔다하는 의사결정을 할 때 따를 매뉴얼이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즉 책임 추궁을 면할 수 있는 퇴로(退路)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나올 때 한국 정부의 차별로 손해를 봤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5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이 사례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의 중재를 받아들여 수백억 내지 수천억원 선에서 합의를 볼 수도 있지만 끝까지 재판을 고집했다가 수조원을 물어내야 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한 전직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는 "설령 몇조원을 물어내더라도 우리 공무원들이 합의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합의했다가 나중에 당할 책임 추궁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엘리트 관료나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신의 직장'에 들어간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모범답안 적는 데는 귀신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겐 '총대를 메느냐, 마느냐'의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을 때 참고할 답안지가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줏대' 있게 일하다 감방까지 다녀온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이다. 이들 중 일부나마 공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일하게 하려면 포상은 차치하고 일의 결과가 틀어져도 면죄부는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누가 총대를 메려 하겠는가. 기고자 : 김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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